필자가 지도하는 대학생 수업 중에 제품 마케팅에 대한 비즈니스 제안서를 만드는 시간이 있다. 얼마 전 학기말 발표를 위해 태블릿 제품을 만들어내는 기업 브랜딩 파워를 조사하는 설문을 기반으로 마케팅 콘셉트를 수립했다. 제품 론칭에 대한 캠페인을 실시했는 데 흥미롭게도 한국 기업 브랜딩 조사도 있었다. 그중 한 기업 브랜드는 너무 진부한 느낌이고, 주 고객인 대학생 공감대에 갭(gap)이 심하게 느껴진다는 설문 조사 결과가 나왔다. 학생들은 이를 극복할 다양한 전략을 수립하는 데 주력했다. 현지 대학생과 적극적인 소통을 위해 넷플릭스나 훌루같은 가장 인기 있는 미디어 채널과 파트너십 구축으로 브랜딩 파워를 극대화시키는 데 집중했다. 과연 브랜딩이란 무엇인가.
브랜딩을 표현할 때 미국 현지에서 자주 쓰이는 표현으로 ‘Gut feeling’이란 말이 있다. 구어로 ‘직감’이라는 뜻이니, 브랜딩이 즉 본능에 가깝다는 셈이다. 만져지지도 구체적으로 표현하기도 쉽지 않은 것. 그러나 모든 기업이 원하는 것이 바로 브랜딩이다. 경쟁이 더욱 치열한 해외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가져야 하는 ‘브랜딩 콘셉트’를 기업은 과연 ‘어떻게’ 일궈낼 것인가.
국내 S사가 프리미엄 브랜드로 거듭나기 위해 글로벌 마케팅에 전력을 다하고 있던 2000년 즈음이다. 당시 시드니 올림픽은 물론이고 각종 골프대회를 스폰서하며 프리미엄 이미지를 만들었다. 세계적 디지털 리더로 거듭나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던 S사에 대한 현지 여론은 그리 긍정적이지는 않았다. 싸구려 TV를 만드는 기업이 프리미엄 브랜드 이미지로 탈바꿈하기 위한 도약을 시도했다. 과연 가능할까.
사람 마음는 쉽게 변하지 않는 법이라고 지적한 ‘월스트리트 저널’ 기사를 한 예로 들 수 있다. 하지만 불과 2~3년도 채 안된 시점에서 S사는 참으로 엄청난 성과를 거두며 새로운 프리미엄 브랜드로 도약했다. 비즈니스 위크는 성공적인 ‘빅 점프’를 두고 드디어 ‘브랜딩을 낳았다’며 그 기업 성공담을 커버스토리로 실었다.
그렇게 미국 여론은 S사 도약을 극찬했고 기업을 바라보는 소비자 의식도 달라졌다. 그들은 더 이상 ‘다양한 싸구려 제품을 생산하는 전문성 없는 기업’이라고 평가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최고 품질과 디자인을 자랑하는 멋진 기업이라는 인식과 함께 모두가 원하는 제품을 만드는 세계적 회사로 바라봤다. 당시 S사 미국 현지 마케팅을 지휘하던 필자는 보스턴에서 거주하면서 현지 소비자와 해외 전문가, 언론의 인식과 대접에 많은 변화가 있음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새로운 퍼셉션에 대한 도전은 분명 의구심 많았던 시작에 불과했지만 S사는 그것을 보기 좋게 극복한 ‘홈런’과도 같은 쾌거를 만들었다.
미국이나 유럽 시장에서 테크놀로지 기업으로 브랜딩 파워를 확립하려면 AR(Analyst Relations)를 소홀히 할 수 없다. AR는 IT 등 테크놀로지 첨단 신제품에 대해 비평 및 평가를 내리는 인더스트리 애널리스트(Industry Analysts)와의 관계와 교류를 뜻한다. 인더스트리 애널리스트 평가와 추천(reference)은 해외 시장 성공은 물론이고 기업 브랜딩 파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들은 세계 기술 기업 및 제품에 관한 전문 지식을 보유하고 있으며 세계 테크놀로지 시장 오피니언을 이끈다. 이들은 테크놀로지 분야 커뮤니티 여론 형성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뿐 아니라 바이어 제품 구매 과정에 최고 영향력을 행사한다. 신제품과 기업이 무수히 많은 미국이나 유럽 시장에서 AR는 바이어 구매 결정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미국이나 유럽 시장 바이어는 신제품을 구매할 때 이들 인더스트리 애널리스트 평가를 다른 어떤 것보다 중시한다. 때문에 이들의 평가 및 추천이 성공 열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AR 효용은 매우 다양하다. 기술 분야 애널리스트는 무수히 많은 IT기업 제품 전문성과 다양한 최신 트렌드를 꿰뚫고 있다. 따라서 이들의 평가는 바이어, IT분야 신문, 잡지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이들의 전문적 평가는 비즈니스 계약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이 있다. 이들의 깐깐한 검증과 긍정적인 평가는 바이어에게 제품 보증서나 마찬가지다. 인더스트리 애널리스트가 보유한 인맥(네트워크)으로 직·간접적으로 전 세계 전문가를 만날 수 있어 마케팅 효과가 뛰어나다. 제품 기획에서부터 테스팅, 시장 채널 및 전략 파트너, 제품 출시 등 일련의 과정에서 전문적인 조언을 구할 수 있다. 해외 전시회에서 제품 데모를 비교 분석하는 애널리스트로 전시회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 제품이나 기업 글로벌 포지셔닝(global positioning)을 위한 최고 마케팅 전략이 된다.
모던 마케팅 시대를 맞아 효과적 AR를 위한 다양한 방법이 생겨나면서 이에 대한 기업 노력은 더욱 활발해졌다. 블로그, 웨비나, 소셜 미디어 등으로 더욱 직접적인 방법으로 소통이 가능하다. 제품에 대한 토론까지 실시간으로 이어질 수 있게 되면서 한국 기업에도 더 많은 기회가 열렸다. 탄탄한 레퍼런스 확보를 통해 브랜딩 파워를 키우고 세일즈를 극대화할 수 있는 적극적인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임수지 에머슨 대학 교수·트라이벌 비전 부사장 sim@tribalvisi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