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차도 이제 ‘브랜드 시대’다. 수년 전부터 브랜드 가치를 키우려는 노력이 구체적인 결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가 분석한 우리나라 자동차 제조사 브랜드 가치가 최근 급성장했다. 짧은 자동차 산업 역사가 갖는 한계를 적극적이고 꾸준한 마케팅 활동으로 극복하려는 시도다. 이제 현대·기아자동차도 명실상부한 글로벌 메이커로 올라선 만큼, 프리미엄 고급차 시장을 공략하려면 이 같은 노력이 필수라는 분석이다.
글로벌 브랜드 컨설팅 회사 인터브랜드의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현대자동차 브랜드 가치는 104억달러(약 11조원)에 이른다. 현대차가 글로벌 40대 브랜드에 진입한 것은 지난해가 처음이다. 현대차 브랜드 가치는 10년 전인 2005년(35억달러)과 비교하면 무려 200%가 증가했다. ‘독일 명차’로 이름 높은 아우디를 제친 것도 2012년부터 3년 연속이다.
2011년 새로운 브랜드 방향성인 ‘모던 프리미엄’을 선포하고 고객과 소통에서 현대차만의 브랜드를 강조한 것이 성과를 거둔 셈이다. 2011년 이후 브랜드 가치는 매년 평균 20% 이상씩 성장하고 있다. 인터브랜드 조사 브랜드 가치는 2012년 75억달러(53위), 2013년 90억달러(43위)로 지속 상승세다.
기아자동차 브랜드 역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2011년 ‘또 다른 박동(A Different Beat)’이라는 새 브랜드 방향성을 제시한 이래 2012년 처음으로 글로벌 100대 브랜드에 진입했다. 지난해에는 브랜드 가치 53억9600만달러(약 6조500억원)로 전체 74위에 오르며 전년보다 9계단 수직 상승했다. 이 회사 브랜드 가치는 2012년 40억8900만달러(87위), 2013년 47억800만달러(84위)로 조사됐다.
현대·기아차 브랜드 알리기 노력이 구체적인 결과로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현대차 ‘리브 브릴리언트’는 자동차를 단순한 상품이 아닌 생활밀착형 문화 요소로 보고 진행한 브랜드 캠페인이다. 라이프, 모먼트, 익스피리언스, 메모리스 네 가지 테마로 빛나는 인생, 특별한 일상, 풍요로운 삶, 소중한 추억 등을 다뤘다. ‘브릴리언트 메모리즈’로 재탄생한 자동차 소재 예술작품은 2015 서울모터쇼에 전시되며 인기를 끌기도 했다.
고객 소통에도 적극적이다. 지난해 5월 국내 완성차 업계 최초로 예술과 자동차를 융합해 개장한 복합문화공간 ‘현대모터스튜디오’에는 1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10만명 이상이 방문했다. 국내 호응을 발판 삼아 러시아 모스크바에 2호점을 개장하기도 했다. 지난 3월에는 서울 삼성동 코엑스 몰 내에 IT로 자동차를 경험할 수 있게 한 ‘현대모터스튜디오 디지털’을 열었다.
최근 잇따른 미술관 후원과 전시 프로젝트는 고급 브랜드로서 입지를 다지기 위한 전략이다. 한국 현대미술 산실인 국립현대미술관에는 총 120억원을 후원한다. 영국의 세계적 현대미술관 ‘테이트모던’과는 2014년부터 2025년까지 11년간 장기 파트너십을 맺었다. 미술관 내 ‘터바인 홀’에서 ‘현대 커미션’이라는 이름으로 백남준전 등 설치 미술 시리즈를 이어간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현대차는 대중적인 브랜드지만 프리미엄 시장도 반드시 공략해야 한다”며 “고급차 시장에서는 브랜드 이미지가 구매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고급화 전략을 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역동성이 강조된 기아차 브랜드 마케팅은 감각적인 특성이 두드러진다. ‘Re:Design 캠페인’을 통해 생활 속 자동차 문화를 강조한다. 2013년부터 이어진 ‘오감 브랜딩’은 기아차 브랜드 정체성을 맛, 향기, 청각 같은 오감을 통해 전달하는 프로젝트다. 브랜드 송 ‘애드번트 오브 더 기안즈’를 공개했고, 조향사 앙투앙 리와 협업으로 탄생한 ‘기아향’도 선보였다. 기아향은 차량 공조 시스템과 연계도 추진한다. 세계적 요리사 장 조지와 함께 기아차 정체성을 반영한 아웃도어와 정찬 레시피도 만들었다. 다가가기 쉬우면서도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맛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2014 브라질 월드컵과 호주 오픈 테니스 대회 후원 등 스포츠 마케팅도에도 적극적이다. 2012년 진행한 미국 슈퍼볼 TV 광고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유명세를 탔다. 기아차 홍보대사인 미국프로농구(NBA) 스타 르브론 제임스의 활동도 고무적이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