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년간 기업소모성자재 구매대행(MRO) 사업의 대기업 진출을 제한한 동반성장위원회 ‘대기업 MRO 동반성장 가이드라인’ 연장 여부가 유통업계의 쟁점이 되고 있다. 가이드라인 적용 기간이 3년 더 연장될 경우, 국내 MRO 시장의 주도권이 다국적 유통업계로 넘어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업계가 우리 안방을 지키면서 중소기업 동반성장이라는 취지를 살릴 수 있는 묘안을 도출해 낼 수 있을 지 주목된다.
2011년 동반위 MRO 가이드라인 제한 이후, 다국적기업들은 법인 설립과 국내 중소 MRO 인수 등을 통해 한국 시장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다. 가이드라인 3년 연장은 외국계 다국적 기업에 날개를 달아줘, 국내 MRO 산업 생태계 붕괴를 자초하는 꼴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그 수혜를 외국계 기업이 독차지하는 것을 방치해선 안된다는 시각이다.
이미 외국계 다국적 MRO업체의 영향력은 확대일로다. 국내 대기업 MRO업체들이 역차별 규제를 받으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최근 3년간 국내에서 MRO 구매대행을 해온 대기업 수는 12곳에서 9곳으로 줄었다. 삼성 계열 아이마켓코리아는 인터파크로 매각됐고, SK 계열 MRO업체는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했다. 한화·웅진 계열사는 철수했다. 남아 있는 곳의 실적도 그동안의 고성장세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초라하다. 상위 6개 대기업 계열 MRO업체인 서브원·엔투비·KT커머스·코리아e플랫폼·DK UNC의 매출 합계는 가이드라인 시행 직전인 2011년 6조7336억원에서 2013년에는 6조1553억원으로 9%나 줄었다.
이 자리를 노리는 곳은 바로 외국계 대기업이다. 미국의 나비엠알오·오피스디포, 유럽의 뷔르트(독일)·리레코(프랑스), 일본의 미스미 등이 동반위 가이드라인 시행과 함께 한국시장에 들어왔다. 대부분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오프라인 기반의 MRO업체들로 온라인 부문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오히려 온라인 기반으로 태생한 국내 대기업 MRO업체들은 동반성장을 위해 오프라인 사업 진출에 소극적인데 반해 이들 외국계 기업은 사업 영역이 자유롭다.
외국계 기업의 시장 점유율 등은 아직 통계조차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대기업들이 경계하는 것은 동반성장 가이드라인 재연장 이후다. 이 기간 외국계기업이 활동 영역을 크게 넓힐 것이란 분석이다. 실제로 지난해 말 국내 중견 MRO업체인 큐브릿지의 매각에 외국계 MRO업체들이 대거 참여했다. 세계 60개국에 진출해 매출 규모만 12조원에 달하는 미국의 오피스디포를 비롯해 27개국에 법인·사무소를 갖고 있는 리레코 등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국내에서 성장이 힘들어 매물로 나온 MRO 대기업을 외국계 기업이 인수하면 너무 쉽게 한국 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며 “동반성장을 이유로 대기업의 참여를 제한했더니 결국 외국 대기업이 수혜를 보는 역차별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어렵게 경쟁력을 높여온 선두 MRO업체의 해외 사업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자국시장을 외국계기업에 빼앗기는 상황에서 해외에서 힘을 받기는 힘들다는 것. 우리 기업보다 규모가 더 큰 외국계 MRO업체의 한국 시장 영역 확대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동시에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힘을 합쳐 시장을 키우고 글로벌 경쟁력도 확보할 수 있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대량 구매를 통한 효율성이 핵심인 MRO사업에서는 ‘바잉 파워(구매력)’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며 “외국계 기업이 전세계 주요 시장에 진출해 엄청난 조달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시장도 빼앗긴다면 글로벌 경쟁력은 저하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표】한국진출 외국계 다국적 MRO업체 현황
※자료:업계 및 각사 리포트
![한국 MRO시장, 국내 대기업 안방에서 물러나자 외국계 안방 장악 나섰다](https://img.etnews.com/photonews/1502/652768_20150204183442_546_T0001_550.png)
김준배기자 j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