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그동안 연구개발(R&D) 투자를 확대하는 동시에 관련 법·제도를 꾸준히 개선해왔다. 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투자 비중이 세계 1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양적 측면에서는 선진국 수준의 연구개발 기반을 갖춘 셈이다. 하지만 국가 연구개발비를 횡령하거나 부당하게 쓰는 사례도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어 이를 근절하기 위한 적극적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연구비 부정 사용은 점점 지능화되는 추세다. 과거엔 연구비 무단 인출, 인건비 유용, 허위 증빙서류 제출 등 비교적 단순한 방법을 취했으나 최근엔 R&D 자금을 빼돌리기 위한 목적으로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는 등 의도적이고 정교하게 변하고 있다.
이에 정부와 R&D 자금 관리기관은 연구개발 사업 수행 과정에서의 연구비 부정 사용을 막기 위해 각종 제도들을 도입해 운용 중이다. 대표적으로 은행·국세청 등과 연계해 실시간으로 연구비를 지급·관리하고 전자세금계산서 등의 전자증빙관리와 온라인 정산서비스를 제공하는 RCMS(실시간 연구비관리 시스템)가 있다. 이를 통해 특정거래처 집중 사용 등의 비정상 집행을 특별 관리하고, 모든 구매 장비 내역을 e-Tube(산업기술개발장비 공동이용플랫폼)에 연계해 증빙서류를 제출하도록 의무화했다.
지난해 산업통상자원부가 도입한 ‘제재부가금 제도’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는 연구비 부정사용 기관 및 개인에게 사용 금액의 100%에 해당하는 과징금을 부여하는 제도로 사업 참여 제한·환수 등의 조치만으로는 부정 사용 방지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마련했다. 제도 도입 후 지난해 1년 동안 10억원이 넘는 제제부가금을 부과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외에도 허위영수증을 발급한 업체에 국세청과 연계해 17억원의 세금을 추징했다. 또 사업비 유용 기업에 대한 검찰 수사를 의뢰해 형사처벌을 추진하는 등 연구비 부정 사용에 강도 높은 제재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들은 연구비 부정 사용 기업 및 연구원에게 가해지는 ‘엄격한 사후조치’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연구비 관련 비리를 뿌리 뽑기 위해선 새로운 제도, 강력한 제재 처분만큼이나 연구지원전문가 교육제도 운용 등을 통한 예방적 관리와 연구수행 주체들의 인식 변화가 중요하다.
연구비 부정 사용에 대한 예방적 관리를 위해 연구지원전문가 교육을 내실화하려는 일관도 노력도 같은 맥락에서다. 이 제도는 과제 관리, 사업비 집행 및 정산, 연구 성과 제고 및 연구비 오·유용 방지를 위한 교육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 교육 참여 활성화를 위해 수료생에게는 연구비로 인건비 지급이 가능하도록 규정화했다.
지난 2010년부터 자율적 연구문화를 만들기 위해 선량한 연구자에 대한 페널티 부과를 감면하는 ‘성실실패 제도’를 도입해 운용 중이다. 연구개발 결과가 실패하더라도 정당한 사유가 있을 땐 실패를 용인하고 제재 조치를 면제해주는 제도로 선진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문화로 자리 잡았다.
연구 수행자들은 이러한 제도를 적극 활용해 좋은 기술과 아이디어로 승부를 거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국가 연구개발비를 제대로 활용한다면 우수 제품과 기술력을 보유한 우량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며, 더 나아가 부가가치 창출과 사회 공헌에도 이바지할 수 있다. 이러한 선순환적 R&D 생태계 구축을 위해 연구개발비를 국가의 미래를 대비하는 소중한 자원으로 여기는 연구자들의 인식 전환이 절실히 요구된다.
박종만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사업기획본부장 jmpark@keit.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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