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수안 망전필위(天下雖安 忘戰必危).
중국 병서에 나오는 말로 우리에게는 병자호란과 임진왜란의 교훈으로 많은 언급되는 문구다. 간단하게 “세상이 평안해도 전쟁을 잊으면 위기가 온다”는 의미로 항상 대비하는 자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너무 앞선 걱정일까. 국내 전력 시장의 지금의 모습이 그렇다. 국가 전력수급 여건은 근래 어느 해보다 태평성대다. 순환정전 이후 블랙아웃을 걱정했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한겨울에도 전력예비율은 여유로운 것 같다.
하지만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위기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불과 2년 전에 초과 이익이라는 지적까지 받았던 발전사들은 올해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공급이 많아지면서 쉬는 발전소들이 늘면서 수익이 줄고, 이제는 발전소 철거를 검토하는 상황까지 왔다. 2년 만에 바뀐 상황이라고 하기에는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모두가 생소하다. 그동안 국가 전력 정책은 부족 사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 늘어나는 수요를 쫓아가기 바빴고, 가격 급등 상황의 대책과 경험만 가지고 있다. 지금처럼 전력이 남고, 많은 발전소들이 대기만 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외적 현상만 보면 좋아 보이지만 그 뒤편에 어떤 변수가 숨어있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다가올 그리고 우리가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변수에 대비해야 한다. 시장 환경이 바뀌면서 언급조차 필요 없던 것들이 위험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동안 발전사들에게 높은 수익을 보장하던 시장 구조는 공급이 늘어나고 가격이 하락하면서 보이지 않았던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전력이 부족할 때는 당연하지만 지금처럼 여유가 있을 때에도 이를 유지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발전사들의 주장처럼 수익성 저하로 일부 사업자들이 철수하면 다시금 공급부족 문제에 직면 할 수 있다. 부족하면 늘리고 많으면 줄이는 식의 쳇바퀴로는 위기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지금처럼 전력이 안정적일 때일수록 망전필위(忘電必危)의 자세가 필요하다.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