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최근 4년 연속 무역 1조달러를 넘었고, 이를 지난해보다 8일이나 앞당겨 달성했다니 더없이 뿌듯해진다. 대학에서 원천기술을 개발하고, 대학원생과 창업해 차별화된 기술로 세계시장에 진출하던 일이 생각난다. 제품 하나를 수주받기 위해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기술미팅과 수백회가 넘는 이메일을 주고받은 끝에 수출에 성공했다. 수출대금 중에서 1달러 지폐를 출금해 액자를 만들면서 세계 시장에서 우뚝 서겠다는 다짐과 기술보국의 사업의지를 다졌다.
차별화된 기술과 제품을 만들기 위해선 혁신적 연구개발(R&D)이 뒷받침돼야 한다. 우리나라 R&D 투자는 GDP 대비 투자비중 1위, R&D 총투자 규모 6위로 세계적 수준이지만, 기술사업화 성과는 바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SCI 논문은 세계 10위, 국제특허 출원은 세계 5위이나 논문 피인용도는 30위에 머문다. 기술무역 적자는 2012년 57억4000만달러로 OECD 국가 중 바닥권이다. OECD는 한국의 R&D 생산성 저조를 지적했다. 정부가 개선안을 내놓았지만 제대로 작동될지 걱정이 앞선다. 그동안 국가 R&D가 기업·시장·현장과 괴리된 채 진행됐기 때문이다.
국가 R&D 평가기준이 SCI 논문과 특허 위주로 진행되다 보니 지난 10년간 우리나라 SCI 논문은 2만건에서 4만7000여건으로 늘어났으나 세계 시장 1등 제품 수는 87개에서 64개로 줄었다.
중소·중견기업과 공동으로 진행하는 산학 및 위탁 연구개발은 같은 기간 각각 반 토막, 3분의 1 토막이 났다. SCI 논문 열풍이 우리 과학기술계를 휩쓸고 지나가면서 대학과 출연연의 산학협력 연구역량이 붕괴된 흔적이 생생하다.
‘노벨상 신드롬’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의학상, 화학상 등 노벨상을 5개나 탔지만 산업경쟁력은 뒤처진 아르헨티나를 타산지석으로 돌아봐야 한다. 우리는 노벨상을 받는 사람보다 노벨상을 주는 노벨 같은 창업가(기업가)를 배출하는 것이 더욱 절실하다.
이제 국가 차원에서 R&D의 큰 흐름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술사업화의 궁극적인 목적인 새로운 시장과 일자리 창출을 달성하기 위해 몇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기술사업화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R&D 프로세스를 혁신해야 한다. 시장(수요자)을 고려하지 않는 R&D는 연구를 위한 연구일 뿐이다. 연구자가 시장과 기업을 모르기 때문에 시장과 괴리된 연구만 하는 것이다.
기업과 시장이 필요로 하는 과제를 도출하고, 기술사업화 중심의 평가지표를 마련하는 등 R&D 프로세스의 대대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둘째, 글로벌 시장을 향한 연구개발사업화(R&BD)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는 기술만 개발하면 시장이 열릴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투자했다. 철저한 시장분석 없이 기술만 개발해서는 사업화를 이룰 수 없다. 글로벌 메가트렌드, 산업가치사슬, 주요 경쟁자 등을 분석해 투자 대상을 도출하고 현장에서 작동 가능한 R&BD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셋째, 기술사업화 활성화 기반과 생태계를 확충해야 한다. 미국은 제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투자를 확대하고, 인프라를 구축하면서 기술·시장·금융을 연계해 기업가정신을 제고하고 있다. 영국 테크시티는 금융과 기술을 융합한 핀테크(Fin-tech)를 기반으로 글로벌 ICT 기업이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대만은 융합 신산업 규제를 완화해 경제적 성과를 내고 있다.
우리 기업도 이제는 세계 시장에 도전할 수 있도록 기술사업화 기반을 견고하게 다져야 한다. 기술 개발이 금융·시장과 연계되는 생태계 조성이 시급하다.
우리 중소·중견기업이 글로벌 리더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국가 지원 아래 산학연 역량을 결집하고 기술개발, 특허·표준, 인력양성, 기반구축, 해외마케팅, 무역금융 등의 리소스를 효과적으로 집중해야 한다. 모든 것은 글로벌 시장에 해답이 있다.
박희재 산업통상자원 R&D 전략기획단장 hjpahk@osp.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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