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윤 작가의 아틸라, The 신라 제6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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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이미 오래된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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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노리아 공주는 환장한 듯이 덤볐다. 손끝만 닿아도 발발 떨 정도였다. 그날 밤, 오에스테스는 호노리아 공주의 치마속에서 도통 벗어나지를 못했다. 아무리 전장에서 여자에 굶주려 살았다 해도 그의 나이는 이미 한 풀 꺾인 나이였다. 도저히 상대 할 수 없었다. 그녀의 색기는 목숨을 담보하고 있었다. 호노리아 공주의 욕망은 펄펄 끓었다. 끝도 없었다. 오에스테스는 스스로 물러났다. 호노리아 공주는 오에스테스를 잡았다.

“어딜 가시게요?”

오에스테스는 손을 뿌리쳤다.

“공주님께 마땅한 자들을 부르겠습니다. 원하시면 끝나고 죽이셔도 됩니다.”

오에스테스는 나갔다. 곧이어 젊은 전사 세 명이 들어섰다. 호노리아 공주는 씨익 웃었다.

“자, 이리와.”

전사들은 서로 웃으며 호노리아 공주에게 미친듯이 달려들었다.

“그래. 죽어보자. 그리고 죽이자. 죽이자.”

호노리아 공주는 떠들어댔다. 그녀는 로마의 공주이지만 훈의 제국에서는 창녀보단 못한 대우를 받았다. 그녀는 로마의 문(門)을 열어준 매춘부에 지나지 않았다. 그날 호노리아 공주는 마지막 천국을 맛보았다.

왕 눌지는 또 악몽에 시달렸다. 그는 한 사내를 꿈에서 보았다. 눈이 지나치게 작고 쭉 째졌으며 양 쪽 눈이 각각 그 빛깔이 다른 한 사내였다. 하지만 위용은 대단했다. 그의 외양과 내면 모두 이상하리만치 익숙했다.

“누구시오? 당신은?”

그러나 그 사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당신 혹시 미사흔이오?”

사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당신 혹시 복호요?”

사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당신 혹시 미추왕이오?”

“당신 혹시 김알지요?”

“당신 혹시 투후 김일제 되시오?”

사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내는 번쩍번쩍 윤이 나는 한혈마와 함께 눌지 쪽으로 기막히게 날아왔다. 날아와서 눌지와 억세게 부딪혔다. 그가 눌지의 가슴을 뚫고 들어왔다. 새로운 장(章)이 열렸다.

눌지는 비명을 지르며 일어났다. 그는 자신의 가슴을 더듬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고통스러웠다.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며 윽윽거렸다. 의원들이 달려왔다.

아틸라는 자신의 한혈마 위에서 상대를 노려보듯 거만하게 앉아있었다. 아틸라 뒤로 도열해 있는 훈의 전사들마저 쌍스러울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상대는 교황 레오1세였다. 그는 아비에누스, 트리게티우스와 동행하고 있었다.

“기껏 교회에서 기도하고 설교하시는 분이 이런 전장터에 오셔서 협상을 하시다니요? 발렌티니아누스는 겁쟁이가 분명하군요.”

훈의 전사들이 비웃기 시작했다. 낄낄거렸다.

“황제가 도망갔습니다. 하하하.”

교황 레오 1세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내가 모든 사람의 기도를 들었습니다. 그 모든 기도 속에는 수많은 영웅들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그 영웅들과 아틸라 제왕님과는 분명히 다른 차이가 존재합니다.”

아틸라는 말없이 그의 말을 경청했다. 이상하게 그의 말투는 사람을 끓어들였다.

“로마는 로마인들 이외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아틸라 제왕님은 모든 사람, 모든 부족에게 관심을 갖고있습니다. 세상이 하나되기를 원하십니다.”

아틸라는 그의 말에 점점 빠져들었고 감명하고 있었다.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과 처음으로 대면한 것이다.

아에테우스는 발렌티니아누스 황제와 만나고 있었다. 아에테우스는 강하게 불만을 토로했다.

“지금이라도 아틸라를 쳐야합니다. 아틸라는 아무도 죽이지 못합니다.”

“당신이 죽이겠다는 뜻이오?”

발렌티니아누스는 어깃장을 놓았다.

“아닙니다. 저도 죽이지 못합니다.”

발렌티니아누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럼 누가 죽인단 말이오?”

그는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있었다.

“역사만이 그를 죽일 수 있습니다.”

아에테우스는 결코 주눅들지 않았다. 노장이었다.

“그런데 왜 굳이 아틸라를 공격하려 하시오?”

“바로 지금이 역사의 그때입니다. 역사는 아틸라를 버리고 있습니다.”

발렌티니아누스는 화가 치솟았다. 미쳐버리고 있었다.

“당신이 그때 죽이지 못해서 이탈리아는 유린당했소. 그때 당신이 끝까지 쫒아가서 그를 죽였다면 지금의 로마는 야만인들에게 짓밣히지 않았을거요.”

발렌티니아누스는 고래고래 소리질렀다. 그때 페트로니우스와 헤라클리우스가 칼을 들고 아에테우스에게 다가왔다. 아에테우스는 직감했다. 자신의 죽음을.

“아틸라 더 훈은 적어도 자신의 부족을 위해 싸운 전사를 이렇게 죽이지 않습니다. 그를 야만인이라고 부르는 당신이야말로 야만인이오.”

그 순간 두 사람은 아에테우스의 목과 가슴을 쫘악 갈랐다.


글 소설가 하지윤 lif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