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제조사인 A사에 B전자회사로부터 솔깃한 제안이 들어왔다. B사가 개발한 전자시계에 A사 브랜드를 붙여 팔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내부 의견이 제각각이다. 많은 투자를 하지 않고도 큰 수익을 낼 수 있으니 절호의 기회라는 의견이 있는 반면에 지금까지 창조적인 제품을 개발해 시장을 선도해왔는데 남이 개발한 제품에 브랜드만 붙이는 것은 우리와 맞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의견마다 일리가 있어서 쉽게 결론 나지 않는데, 이럴 때는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결정을 내려야 할까?
이같이 의견이 분분해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것은 회사 안에 모두가 공유하는 ‘우선순위의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군대가 한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 비결은 명확한 기준, 즉 ‘승리’와 ‘상명하복’이 있기 때문이다. 군대뿐 아니라 어느 회사나 모두가 따를 일하는 기준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가치관 경영의 3요소 중 가장 중요한 ‘핵심가치’다. 핵심가치란 수많은 가치 중에서 업무를 처리할 때 무엇을 가장 먼저 고려할 것인지 정의하는 것이다. 예컨대, ‘승리’와 ‘상명하복’이 핵심가치인 조직이 있는 반면에 ‘소통’과 ‘양보’가 핵심가치인 조직도 있을 수 있다. ‘도전’과 ‘혁신’이 중요한 조직이 있는가 하면 ‘공동체 의식’이 우선인 조직도 있다. 회사에 따라서 다를 뿐, 좋거나 나쁘다는 가치를 따질 수는 없다. 단 중요한 것은 ‘회사의 핵심가치가 얼마나 명확한가’ ‘구성원이 이를 잘 알고 동의하여 실천하는가’다.
핵심가치가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조직의 신뢰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경영에서 말하는 신뢰란 ‘예측 가능한 것에 대한 믿음’이다. 부하직원들이 “우리 사장은 이런 상황에서는 항상 이런 결정을 할 거야”라고 믿고 예측할 수 있다면 그 회사에는 핵심가치가 있는 것이다. 일관된 리더의 의사결정은 바로 핵심가치에서 나온다.
만약 회사의 핵심가치가 명확하지 않다면 직원들은 회의할 때마다 서로의 생각이 옳다며 논쟁할 것이다. 자연히 갈등이 생기고, 팀워크가 깨져 화합이 어려워진다. 반대로 핵심가치가 명확하고 이를 제대로 실행한다면 모두가 같은 기준을 가지고 의사결정을 내리니 갈등이 줄어든다. 직원들이 가치 중심으로 똘똘 뭉쳐 결속하게 되므로 조직의 에너지도 더 커진다.
문제상황에서 A사의 핵심가치가 ‘시장을 선도하는 개척정신’이라면 큰 고민 없이 B전자회사의 제안을 거절하기로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반면에 핵심가치가 ‘성장 우선’이라면 브랜드만 빌려주고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기회니 이의가 없었을 것이다. 핵심가치가 있고, 제대로 그 역할을 하고 있다면 경영상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할 상황에서 훨씬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있고, 불필요한 갈등을 겪을 이유도 없다. 실제로 소니의 전성기인 1980년대, 전 세계적으로 전자시계 붐이 일었을 때 얘기다. 시계회사인 타이맥스가 소니에 “우리의 기술력으로 시계를 만들고 소니 브랜드를 붙여서 팔자”고 제안했을 때, 소니는 핵심가치가 ‘시장을 선도하는 개척정신’이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이미 기술적으로 성숙한 전자시계 산업에서는 소니가 시장을 개척할 기회가 없다고 판단했고, 그렇다면 아무리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더라도 소니의 핵심가치와 맞지 않는 것이었다.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직원들을 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핵심가치가 명확해야 한다. 또 이를 전 직원이 확실히 알고 업무 속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공유와 공감이 충분히 이뤄져야 한다. 기업의 핵심가치가 명확할 때 가장 이익을 보는 사람은 바로 리더다. 핵심가치가 명확하지 않을 때에는 리더가 조직의 모든 일을 하나하나 다 결정해야 하니 바쁘고 힘이 든다. 그러나 핵심가치가 제 역할을 하게 되면 조직이 한마음 한뜻으로 일하게 되니 리더의 부담이 줄어든다.
경영이란 망망대해에서 파도를 가르며 배를 운항하는 일에 비유할 수 있다. 거센 파도를 헤치고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서로 힘을 모아야 할 선원들이 제각각 흩어져 딴 일만 하고 있다면 항해를 할 수 없다. 회사가 강력한 엔진을 달고 하나의 방향으로 힘차게 나아가게 해주는 것이 핵심가치다. 그러니 직원들이 하나로 뭉치지 않는다고, 각자 다른 생각만 한다고 속상해하기 전에 우리 회사의 핵심가치부터 점검해보자.
공동기획: 전자신문·IGM창조비즈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