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문조사 결과 국민 대다수가 여성가족부 성인 인증 강화에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한 마디로 ‘서비스 이용이 불편하고 성인 정보접근권을 침해하며 인터넷 산업 발전에도 도움이 안 된다’는 얘기다.
가장 주목할 대목은 53.5%가 별도 성인 인증이 없는 서비스로 이동할 뜻을 밝혔다는 것이다. 토종 서비스가 아닌 여가부 규제 수용 의사가 없는 외국 서비스를 뜻하는 결과다. 규제로 인한 역차별, 역차별로 인한 국내 산업 파괴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수치다.
◇비합리적 여가부 규제, 토종 서비스 죽이고 외산 서비스만 밀어준다
여가부 성인인증 강화가 역차별로 이어지는 이유는 규제가 국내 서비스는 일괄 적용되는 반면에 해외 서비스에는 사후 모니터링을 통해 제한적으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동영상 서비스의 경우 판도라TV나 곰TV 등 국내 서비스를 이용하면 매일 귀찮은 별도 인증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유튜브로 시선을 돌리면 아무 제한 없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유튜브를 선호하기 마련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규제 목적이 성인물에서 청소년을 보호하는 것이라면 모든 서비스에 같은 기준으로 적용돼야 하지만 유튜브는 예외”라며 “국내 동영상 시장을 장악한 유튜브를 빼고 규제를 강요하는 것은 효과도 없을뿐더러 결과적으로 해외 서비스 좋은 일만 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가부는 사용자가 자발적으로 콘텐츠를 올리는 개방형 서비스 유튜브는 시스템을 통한 사전 조치가 어렵다고 해명했다.
당장 음원 서비스가 규제로 인한 된서리를 맞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새로운 한류 콘텐츠로 떠오른 웹툰과 웹소설, 포털 서비스도 대상이다. 여가부는 웹툰과 웹소설 업체, 포털 등에 별도 성인인증 도입을 압박하고 있다. 어렵게 자리 잡은 서비스가 여성부 규제에서 벗어난 해외 서비스에 국내 시장을 내줄 수 있다. 포털 역시 마찬가지다. 불필요한 규제에 언제든 발목 잡힐 수 있다는 불안감이 팽배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여가부 성인인증 강화가 사용자에겐 불편함을, 기업에는 경쟁력 약화를 가져온다는 것이 조사를 통해 밝혀졌다”며 “업계 입장에선 규제로 인한 사용자 이탈을 걱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해외 서비스 역차별로 인한 피해가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규제에 집착하는 여가부 태도가 답답하다”며 “국내 산업 발전과 사용자 편의를 위해 여가부가 규제를 재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설문조사 결과에 여가부 측은 “성인 사용자가 어느 정도 불편함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청소년 보호라는 큰 틀에서 이해를 부탁한다”며 “사용자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기업 매출 감소는 물론 소비자 비용까지 증가 우려
청소년 유해물 접근 시 매일 최소 1회 이상 성인인증을 강제한 여가부 조치로 기업은 당장 비용 증가와 매출 하락이란 어려움을 떠안게 됐다. 하지만 기업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장기적인 서비스 경쟁력 저하다.
당장 21일부터 별도 성인인증에 들어가는 음원 서비스는 자체 시스템 부재로 전문 업체 서비스를 이용해야 한다. 여가부는 지난 6일 별도 해명자료에서 업계 부담을 줄이기 위해 당초 건당 40원이었던 인증 비용을 10원으로 내렸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주 실제 일선 음원 업체에 통보된 비용은 건당 20원에서 40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건당 20원으로만 계산하면 별도 성인 인증을 위해 업계가 부담하는 월 비용은 약 30억원에 이른다. 40원이면 두 배다.
비용증가는 작은 문제다. 별도 인증에 따른 불편함으로 사용자가 다른 서비스로 이탈하면 매출 감소를 피할 수 없다. 비용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매출이 준다면 기업 입장에선 가격 인상이란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다. 여가부의 무리한 규제가 사용자 불편을 넘어 소비자 비용 증가까지 초래하는 셈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사용자를 위해 써야 할 돈이 엉뚱하게 인증 업체 사업자에게 돌아가는 셈”이라며 “별도 인증으로 사용자가 줄 경우 업체는 사용료 인상을 고려할 수밖에 없고 결국 피해는 소비자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산업이 죽어도 여성부는 ‘모르쇠’
수익 감소보다 더 큰 문제는 산업을 바라보는 여가부의 태도다. 여가부가 산업을 위해 내놓은 조치는 인증비용 축소가 전부다. 규제로 인한 서비스 경쟁력 약화와 해외 서비스 역차별 문제에는 묵묵부답이다. 규제에 발목 잡힌 국내 서비스가 해외 서비스에 안방을 내줄 수 있다는 외침이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점유율의 80%를 유튜브가 차지하고 있고 다양한 해외 서비스의 국내 진출 시도가 활발해지고 있다”며 “대체재가 무수히 많은 상황에서 여가부 규제는 글로벌 기업과 경쟁해야 하는 국내 콘텐츠 사업자 경쟁력을 저해하고 사실상 국내 기업에 대한 역차별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이어 “유튜브 같은 무료 서비스는 규제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하는데 청소년 보호에 왜 유료와 무료 구분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유튜브는 광고로 막대한 수익을 얻는데 국내 사업자만 청소년유해물을 이용해 돈을 버는 것처럼 몰고 가는 건 분명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여가부 관계자는 “건강한 사용자와 인터넷 환경을 만드는 여가부 조치는 장기적으로 산업에 도움이 된다”며 “무료 서비스는 업체가 자율규제 수준을 높이게끔 유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진욱기자 jjwinw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