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끼리 얘기지만 대학 교수가 최악입니다. 차라리 정치인이나 언론인이 낫습니다.”
박근혜정부 2기 내각에 대한 전직 관료의 인사평이다. 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여러 장관과 일해본 그의 경험담이다. 정치인이나 언론인은 나름대로 소신을 갖고 뚜렷한 성과를 내려고 도전하지만, 교수 출신은 대체로 대학 사회 특유의 아카데미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
미래창조과학부 후임 장관에 최양희 서울대 교수가 발탁된 뒤 비슷한 우려가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기대감을 표시하면서도 소신과 추진력에서 의구심을 나타내는 상반된 목소리였다. 박근혜 정부의 핵심부처인 미래부가 출범 뒤 성과가 거의 없다는 비판의 연장선상이었다. 혹자는 교수 출신 전직 장관을 겨냥해 “최문기표 정책이 뭐가 있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지난 주말 최 장관은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최근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이 통신용으로 배치된 700㎒ 주파수를 재검토하자는 발언에 “정부가 갑자기 태도를 바꾸면 안 된다”며 사실상 반대 입장을 내놓았다. 또 교육부의 과학기술 교육 축소 움직임에도 “직접적이고 강력한 방법으로 협조를 요청하겠다”며 대립각을 세웠다. 그동안 타 부처와 갈등할 수 있는 사안에 장관이 직접적인 언급을 피해온 관례에 비춰보면 다소 파격적인 소신 발언이었다.
그런데 미래부 장관에게 거는 소신은 이런 이슈에 대한 것뿐만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경제의 성장엔진을 만들어내는 비전과 추진력에 더 많은 기대를 건다.
미래부가 예전 ICT부처에 비해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본질적인 문제는 ICT 정책 패러다임이 바뀐 측면이 크다. 과거 정부에서는 초고속인터넷, CDMA 등 대규모 네트워크 인프라 투자로 산업을 활성화하는 데 정책의 방점이 찍혔다. 하지만 이명박정부 이후 ICT 정책은 산업보다 국민 후생에 초점이 맞춰졌다. ICT는 투자할 만큼 했으니 이젠 효율과 국민 혜택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포퓰리즘과 맞물리면서 ‘통신료 인하’가 ICT 정책 최우선 과제가 되기도 했다. 이런 맥락에선 최문기 전 장관도 족적을 남겼다.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소비자 혜택에 맞춘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을 임기 내 제정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반대급부가 나타났다. 세계 최고 ICT 산업을 기반으로 고공행진하던 한국경제의 역동성이 서서히 사라졌다. 오히려 한 수 아래로 봤던 중국이 시분할 롱텀에벌루션(LTE-TDD) 시장을 선점하는가 하면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 턱밑까지 쫓아왔다.
최 장관이 참 어려운 시기에 미래부를 맡은 것은 틀림없다. 주파수, 과학교육 등 이슈를 놓고 부처 간 갈등이 가시화된 데다 창조경제의 가시적인 성과를 이젠 내놓아야 한다는 성화도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미래부를 둘러싼 비판을 이젠 냉정하게 평가해야 새 출발할 수 있다. 박근혜정부가 전 정부와 달리 과학기술과 ICT를 기반으로 해서 한국경제를 되살리겠다고 공언했지만, 실상 전 정부의 정책 패러다임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산업도 국민후생도 함께 잡을 수 있는 그야말로 창조적인 제3의 ICT 정책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최 장관의 소신도 여기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
장지영 정보방송과학부장 jya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