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종영한 드라마 ‘감격시대’는 출연료 미지급 사태로 홍역을 치렀다. 드라마로 생계를 이어가는 배우와 제작진은 발을 동동 굴렀다. KBS에서 방송한 이 드라마는 제작사의 무리한 투자가 발단이 됐지만 표준계약서가 이행됐다면 불거지지 않았을 문제라는 게 방송 업계의 중론이다.
외주제작사 반 이상이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 제작으로 적자이거나 이익을 못 내고 있지만 제작비 현실화와 저작권 배분요건을 담은 표준계약서는 지난해 7월 도입 후 1년째 헛바퀴를 돌고 있다.
표준계약서는 지난해 7월 김종학 PD가 드라마 출연료 미지급 문제 등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사태가 발생한 후 만들어졌다. 방송사와 제작사 간 제작비 세부내역, 권리별 이용기간과 수익배분 비율, 저작재산권 배분 등을 명시하도록 했다. 또 출연자의 출연료 지급보증 등이 담겼다.
제작사는 표준계약서 이행이 절실하지만 방송사는 모르쇠다. 이행의 키를 쥐고 있는 방송사는 1년째 표준계약서 도입 검토 중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방송협회 정책실 최소연씨는 “KBS가 일부 프로그램에 적용하고 있다”며 “KBS는 확대 도입을, MBC와 SBS 연내 시행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표준계약서 이행이 미뤄지면서 제작사는 답답함을 토로했다. 한 드라마제작사 대표는 “KBS가 지난해 말부터 표준계약서를 이행했다고 하지만 이마저도 제작비 명시, 저작권 배분 등의 조항은 없다”며 “나머지 방송사는 아예 도입 자체를 금기시한다”고 전했다.
표준계약서 이행 여부를 점검해야 할 정부부처도 1년째 뒷짐을 지기는 마찬가지다. 문화부는 연내 발간할 방송영상산업백서에 표준계약서 이행 여부를 담을 방침이지만 법으로 강제할 수 없는 사항이라서 내용을 정밀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박용철 문화체육관광부 방송영상과장은 “사적인 계약 특성상 방송사로부터 계약 이행 여부를 점검하지 못해 한국방송협회를 거쳐 간접적으로 이행 여부를 듣고 있다”고 밝혔다.
제작사가 표준계약서 이행에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제작비 현실화와 작품 기여도에 따른 저작권 배분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박상주 드라마제작사협회 사무국장은 “제작사는 방송사에 10년 넘게 제작 내역 공개와 기여도에 따른 저작권 배분을 요구하고 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며 “비록 불완전한 형태라도 표준계약서가 현실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확대 이행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표준계약서가 마련됐지만 방송사가 쥐어주는 팍팍한 제작비에 저작권마저 빼앗겨 경영에 어려움을 겪는 제작사들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박 사무국장은 “최근 광고시장 경기침체와 방송의 일본 판매마저 어려움을 겪으면서 제작사들의 경영난이 심화되고 있다”며 “자칫하면 제2의 김종학 PD가 나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경민기자 km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