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의 한마디는 거추장스러운 `검토`를 거듭하게 만든다
중견기업이나 대기업 경력이 있는 직원들이 합류하면 스타트업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다. 적은 수의 직원들로 인해 사장에서 직원까지 서로 스스럼없이 대하는 관계가 형성된다. 경력이 있는 직원은 직원들과 대할 때는 아주 잘하면서도 정작 임원이나 사장 앞에서는 예의와 격식을 차린다. 말로 해도 되는 이야기를 굳이 보고서를 작성해서 보고하겠다고 하고 편하게 어울릴 수 있는 자리에서도 어려워한다. 여기는 스타트업이니 괜찮다고 해도 안 고쳐진다. 직원이 많아지면서 언제부터인가 이것을 현실로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세월호 사고 직후 사고수습으로 바쁜 상황에 고위공직자의 방문을 위해 의전을 요청해 문제가 됐다. 모 지역의 신임 교육감 당선자가 지역 학교를 방문하기로 했다가, 해당 학교가 방문에 대해 여러 준비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방문을 취소했다고 한다. 상급자에게 부담이 있는 것은 당연하긴 하지만 본말이 전도될 만큼 조직에 부담을 주는 때가 많다. 회사의 현실도 마찬가지인데 CEO는 쉽게 생각하며 착각한다.
CEO의 착각 세 번째는 ‘시간 쓰지 말고 간단하게 검토하세요’라며 업무지시를 하면, 임원과 직원들이 진짜 자투리 시간을 사용해 간단하게 그 일을 할 것으로 착각한다. 이 ‘간단한 검토’에 ‘사장님 지시사항’ 딱지가 붙어 회사의 핵심업무를 중단시키며 진행된다는 사실은 모른다. 더 큰 착각은 이런 ‘비상훈련’을 가끔 했던 것으로 오해하는 것이다. 사장, 임원의 지나가는 말 한마디, 관심 표명과 같은 것들도 수집되고 해석돼 하부조직의 의사결정에 사용되기까지 한다. 그래서 실무 직원들은 우리 회사는 이랬다 저랬다 한다고 불평한다.
즉흥적으로 생각난 아이디어, 있으면 좋을 것 같은 일, 다른 회사 흉내 내며 하는 일, 체면 때문에 하는 일, CEO의 인맥들이 부탁한 일, CEO가 회사 미션과 간접적으로 연관된다고 자의적으로 합리화하며 추진하는 사장님 지시와 같은 ‘비상훈련’들만 제거해도 어쩌면 지금 인원의 반으로도 회사가 운영되지 않았을까? 아니면 두 배의 속도로 달려가고 있을 거다.
간단히 검토하라는 방식의 효율성을 추구하지 말고, 회사 업(일)의 본질을 신중히 생각하고 이와 연관되지 않은 즉흥적인 일을 줄이면 더 큰 효율성을 얻을 수 있다. 부지런하기보다는 스마트한 CEO가 회사를 살린다.
프라이머 대표 douglas@prime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