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삼성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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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스마트폰시장 1위, 메모리반도체 1위, TV 1위.

5000만명을 조금 넘는 인구와 분단된 국토, 부존자원 없는 나라에서 만들어낸 기록에 세계인들은 부러운 눈길을 보낸다. 전국토의 70% 이상이 전란에 파괴된 뒤 60년 만에 이룬 성장스토리엔 혀를 내두른다.

조금 과장을 해본다면 삼성이란 기업이 우리에게 있었기에 가능했다.

삼성의 성장스토리는 우리나라의 성장스토리가 됐고, 삼성의 운명은 우리나라 경제와 소비, 경기 및 시황을 좌지우지하는 그야말로 국가경제와 동일체가 됐다.

이런 삼성이 창립 이래 가장 중차대한 전환기에 섰다.

1기 삼성의 이병철 선대회장은 사업을 일으켜 폐허위의 국가를 구하고, 보하게 한다는 사업보국의 대명사가 됐다. 이어 2기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사업으로만 보면 우리나라 경제규모를 글로벌 톱10에 올려놓았다고 할 정도로 찬사를 받았다. 이제 3기 삼성의 문이 열리기 직전이다.

‘있고, 없고’의 비교로 선대 경영자시대와 대비시켜 보면 몇 가지 시사점이 압축된다.

우선 1·2기 삼성엔 치열한 경쟁자가 있었다. 안으로는 현대·LG 등과 생존을 걸고 각축을 벌여야 했고, 밖으로는 소니·노키아 등 글로벌 공룡기업들의 공세에 온몸으로 맞서 싸워야 했다. 이런 안팎의 전쟁을 치르면서 삼성에는 글로벌DNA와 성공 노하우가 차곡차곡 쌓였고, 결국 전쟁에서 승리했다.

이제는 삼성의 앞에서 이런 자극과 동기부여를 해줄 경쟁자가 이미 국내에선 사라졌다. 세계적으로도 전쟁 중인 애플이나, 잠재적 일전을 앞두고 있는 구글은 태생부터 다를 뿐 아니라 바라보고 뛰는 목표가 다르다. 경쟁이 일어나지 않으니 혁신에 무뎌질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삼성은 시기마다 확실한 성장 매듭이 있었다.

이병철 창업주는 반도체로, 이건희 회장은 스마트폰으로 세계시장을 아우른 성장 아이콘을 우리나라 경제사에 아로 새겨놓았다. 특히 이들 사업은 서로 단절된 성공신화가 아니라 물 흐르듯 이어지며 2대의 시간을 거쳐 꽃을 피운 특성을 가졌다.

하지만 앞으로의 삼성에 이처럼 성장 엔진이 되어줄 사업이 있는가. 삼성의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생각의 끝이 여기에 닿아있다.

이런 우려의 꼬리표를 단 채 삼성의 후계작업이 일사분란하게 이뤄지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충성도 높은 임원들을 앞세워 속도감을 높이고 있다.

삼성이 어떤 기업인가. 삼성은 이제 가업(家業)을 넘겨주는 정도가 아니라 국업(國業)이라 할 정도의 비중을 가졌다. 국가의 지원도 전폭적이었다. 가히 국민기업이라 할 정도다. 애초 잘못된 길로 들어서거나, 경영이 독단에 휘둘리면 안되는 이유다.

그동안 성장을 위해 조용히 용인되거나 암묵적으로 동의됐던 일들도 시대 변화에 맞게 뜯어고치거나 혁파돼야 한다. 삼성의 이익을 위해 소진돼가는 수많은 중소기업의 수익성 문제도 그 중 하나다.

사실상 삼성전자 1대 주주로 올라선 국민연금의 의결권·주주권 행사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서 나온다. 미래 불확실성이 커진다면 주주가치 하락은 필연적인 것이고, 정부도 그 역할을 방기해선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삼성이 빈칸을 무엇으로 채우느냐에 따라 국운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하면 지나친 억측일까.


이진호기자 jho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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