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의료서비스가 중동과 독립국가연합(CIS) 등 국가에서 한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과거 개별 병원의 소규모 해외진출에서 정부 간 협약을 통한 대규모 수출로 확대됐다. 대표적인 지역이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등 중동 국가다. 카자흐스탄 등 CIS 국가도 주요 수출 대상국이다. 의료산업이 새로운 수출 동력으로 떠오르지만 실제 계약까지 과정이 오래 걸리는 등 문제도 적지 않다. 의료 한류를 세계로 확산하기 위해 의료계와 정부의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다.
분당서울대병원·서울성모병원·가천대 길병원·삼성서울병원 등 대형 종합병원이 앞다퉈 의료 수출에 나섰다. 의료 기술부터 인프라와 소프트웨어(SW)까지 다양하다. 최근에는 외국 기업이 세계 시장을 장악하는 의료기기 분야도 수출 대상이다. 국내 종합병원이 해외 수출에 나서는 배경은 세계적인 의료서비스 체계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의료시장이 수익적으로 포화 상태에 달한 것도 원인이다.
◇외국인 환자 급증이 수출 기폭제
대형 병원의 대규모 수출은 한국형 의료서비스를 원하는 외국 환자가 급증하면서 본격화 됐다. 한국을 방문하는 중동 국가의 환자는 매년 큰 폭으로 증가했다. 서울성모병원을 방문한 외국인 환자는 2010년 7859명에서 2011년 1만3519명, 2012년 1만6856명으로 늘어났다. 지난해에는 2만명을 넘어섰다. 외국인 환자 증가로 관련 수익도 크게 늘어 2012년 100억원, 2013년에는 158억원을 돌파했다. 다른 대형 종합병원도 외국인 환자가 증가하고 있다.
이 같은 추세에 맞춰 대형 병원은 중동·중국·러시아·CIS 국가 등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기 위해 해당 국가의 언어 능통자를 코디네이터로 배치했다. 환자 수가 많은 중동·러시아·중국 국가의 의사면허를 보유한 의사도 투입했다. 아랍계 방송을 시청할 수 있게 하고 이슬람 기도실을 준비하는 등 환자 서비스 체계도 갖췄다. 이화의료원은 오는 2017년 마곡지구에 1000병상 규모의 글로벌 병원을 가동한다. 전 병실을 1인실로 꾸며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겠다는 계획이다.
외국인 환자 급증은 대형 병원이 수출을 본격화하는 계기다. 승기배 서울성모병원장은 “수술을 받은 외국인 환자가 사후 치료를 받기 위해 재방문하는 데 많은 비용이 든다”며 “자국 내에서 치료 받기를 원한다”고 전했다. 해외에 ‘수술 후 치료센터’ 건립을 추진하는 배경이다.
외국인 환자 급증하면서 해당 국가의 정부 관계자가 한국을 방문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 2월 UAE 아부다비 왕세자 등 방문단은 서울성모병원을 찾아, 선진 의료시스템을 체험한 후 수출 협상이 가속화 됐다. 분당서울대병원의 차세대 의료정보시스템은 중동과 아시아 국가뿐 아니라 유럽의 의료 관계자에게도 벤치마킹 대상이다. 가천대 길병원에도 끊임없이 해외 고위 의료관계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분당서울대·서울성모·길병원 등 수출 잇따라
대형 병원의 수출 추진도 잇따랐다. 대부분이 추진 단계지만 연내 여러 국가에서 가시적 성과가 나온다. 길병원은 지난해 우리나라와 사우디아라비아 간에 논의한 정부 간 의료 협약에 따라 뇌과학연구센터 수출을 논의했다. 이근 가천대 길병원장은 “이달 15일 1500억원 규모의 뇌과학연구센터 의료기술과 인프라를 수출하는 최종 계약을 체결한다”고 말했다.
서울성모병원도 연내 UAE 등에 건강검진센터를 수출한다. 다국적 의료서비스지주회사인 VPS헬스케어그룹과 공동으로 한국형 건강검진센터를 설립하기 위한 양해각서(MOU)를 최근 교환했다. 한국을 방문해 조혈모세포이식 등의 수술을 받은 UAE 환자를 위해 수술 후 치료센터인 ‘애프터케어센터’를 설립하는 방안도 해당국 정부와 논의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도 사우디아라비아 킹파드왕립병원과 아바타 마우스 기술이전 계약을 추진한다.
분당서울대병원은 대규모로 확대될 사우디아라비아 의료IT 사업 수주를 위해 다국적 의료IT업체와 경쟁한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발주한 병원정보시스템 고도화와 모바일 디지털병원시스템 구축 등 공공보건 의료IT사업에 제안했다. 의료진이 직접 참여한 분당서울대병원은 세계 유수의 의료업체를 제치고 사업자 선정에 유리한 위치를 점했다. 이철희 분당서울대병원장은 “6~7월이면 중동 국가 대상으로 의료IT 수출과 관련한 긍정적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의료 한류 만들기 위해 과제 많아
다수의 종합병원이 수출에 적극 나서지만, 한국형 의료를 한류 상품으로 확대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무엇보다 현지 국가의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 경제력을 갖춘 중동 의료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고유의 이슬람 문화를 이해하고 맞춤형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정부 관계자는 “중동 국가 관계자는 종교 행위를 가장 우선시 해 사업 추진이 늦어지는 일이 대부분”이라며 “적절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계약 프로세스가 투명하지 못한 것도 문제다. 사우디아라비아 의료IT 수출은 지난해 9월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직접 방문, 국가 간 협약으로 추진했지만 3개월 만에 이를 파기했다. 현재 일반 경쟁체제로 사업자 선정을 진행하고 있다.
사업을 추진했던 코리아메디컬홀딩스 관계자는 “중동 국가 사람의 특성상 계약을 위한 서명을 한 후에도 사업을 뒤엎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사업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계약 체결에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다.
중국, CIS 등 국가 진출 시 종합병원 전체를 대상으로 할 경우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유의해야 한다. 체계적인 시장 분석으로 선택과 집중해야 해외진출 성공률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 평가다. 대형 종합병원은 건강검진센터 등 일부 의료 영역만 진출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신혜권기자 hk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