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R&D의 중점투자방향을 설정하고 분야별 예산배분을 중장기 계획에 따라 집행하는 것은 한정된 R&D 재원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이를 위해 참여정부에서는 국가 R&D를 관장할 컨트롤타워로서의 혁신본부를 설치한 바 있으나 그 효과를 충분히 평가해 볼만한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했다. 이명박정부는 혁신본부를 계승하지 않고 과학기술부(과기부)와 교육부를 통합한 결과 주지하는 바와 같이 과학기술정책은 교육부의 시책에 매몰되는 결과를 빚었다.
정권 말기에 국가과학기술위원회를 신설해 혁신본부의 기능을 발휘하도록 했으나 유명무실한 존재로 자리매김 한 바 있다.
박근혜정부는 과거 과기부와 정보통신부(정통부)의 통합 기능을 갖는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를 신설해 정부의 정책기조인 창조경제의 선도적 실천부처의 임무를 부여했다. 그러나 미래부조차도 과거 정통부의 논리가 과기부의 논리를 압도하게 되어 국가 R&D 주요 사업인 기초연구가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중장기적인 지원을 필요로 하는 분야에 대한 지원이 취업률 제고 정책에 밀려나게 됨으로써 미래부의 국가 R&D 방향타 역할은 기초과학분야에서도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미래부는 여타 부처를 리드할 제도적 장치 부재로 인해 국가 R&D 사업에서 부처 이기주의적 현실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00년 이래 국가 R&D를 관장할 수 있는 부처의 수가 증대됨에 따라 여러 부처에서 서로 유사한 R&D 사업계획을 경쟁적으로 하게 되고 이에 대한 부처 간 이해충돌은 상호 간 발목잡기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 부처에서 국가적 차원에서 필요한 주요사업을 추진하려고 하면 경쟁관계의 다른 부처에서 무용론을 들고 나와 무산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다부처 혹은 범부처사업 조차도 실질적으로는 나눠 먹기식 사업이 되어 부처 간 협력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이런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국가 R&D 중점투자방향과 예산배분을 담당할 컨트롤타워를 신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고, 조만간 어떤 형태로든지 설치될 것이 확실시 된다. 그러나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의 경우에서 경험한 바와 같이 컨트롤타워의 설치만으로 난맥상을 빚고 있는 국가 R&D 관련 제반 문제를 풀기는 쉽지 않은 듯하며 보다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과거 과학기술처 시절처럼 미래부를 국가 R&D 책임부처가 될 수 있도록 해 다른 부처는 각 부처의 전통적 고유사업에 따른 R&D 사업 외의 모든 신규 R&D 사업을 미래부에 이관하도록 함으로써 미래부의 범부처 R&D 리더십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강력한 조치를 심각하게 고려해 봐야 할 것이다.
2년차에 들어선 박근혜정부가 성공적인 과학기술정책을 펴기 위해서는 미래부 내의 과학기술정책이 정보통신기술정책과 별도로 수행될 수 있는 보완책을 마련해 과학기술정책이 정보통신기술정책의 들러리가 되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미래부 이외의 부처에서는 해당부처 고유의 한정된 R&D 사업만을 관장토록 하고, 미래부가 국가 R&D 사업의 유일한 책임 부처가 되도록 해 과학기술입국의 전통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우리나라가 세계무역순위 9위를 달성한 현재에도 추진하기 어려운 과감한 과학기술중심 정책을 반세기 전에 펴 과학기술입국의 전통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국가 R&D 사업의 책임부처를 명확히 한 효과에 힘입은 바 크다. 이를 박근혜정부가 계승하기 위한 과감한 정책전환이 필요한 때가 바로 지금이다.
유장렬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초빙연구원·교수 jrliu2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