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균의 스타트업 멘토링]<60>돈이 재앙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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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열풍이 불던 1990년대 말 채용 면접 중에 있었던 일이다. 20대 후반 면접자의 이력에 수십억원의 예산으로 1년 반 동안 큰 성과를 낸 것이 들어 있었다. 당시 우리 회사가 가진 돈 전부보다 많은 돈이었다. 그런데 왜 이직을 하려는지 물었다. ‘회사가 망했다’고 한다. 그 회사는 500억원을 투자 받았다고 한다. 묻지마 투자가 열풍이던 당시에도 엄청난 금액인데 회사는 2년 반 만에 문을 닫았다. 투자금을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다 날릴 수 있었는지 물었더니 그의 답이 가관이었다. “돈 쓰는 건 쉬워요. 돈이 금방 없어지던데요?”

돈이 많아지면 잘나가던 벤처들도 방향을 잃기 쉽다. 잘 안 되는 이유가 각종 기능이 부족해서라고 믿는 CEO는 돈이 생기면 직원을 뽑고 기능 확장에 집중한다. 기능이 많다고 잘되는 것이 아니라 핵심에 강해져야 하는데 다른 것에 집중한다. 고객개발 공식을 알기 전에 기능을 확장하면 고객의 행동을 측정하고 이해하는 데 제곱으로 어려워진다.

경력 직원을 채용하면 창업자는 이른바 ‘시스템으로 일한다’는 사치와 게으름에 빠지고 대외 활동을 즐긴다. 회사 일도 암묵적으로 서로 믿으며, 서로에게 미루는 사각지대가 늘어나고 실행이 느려진다.

CEO들은 스스로 아이디어가 많다고 자주 자랑하는데, 그 말은 돈만 있으면 하고 싶은 ‘취미활동이 많다’는 말이다. CTO도 누리고 싶은 기술적 유희는 끝이 없다. 모두 ‘비전’이라는 탈을 쓰고 본업의 발목을 잡으며 돈과 시간을 낭비하게 만든다. 그동안 돈이 부족했던 행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핵심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었을 뿐이었다.

대기업이 돈으로 시장을 왜곡한다고 비판하면서 정작 스타트업들도 돈만 많으면 공격적으로 마케팅해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둘 다 같은 약탈 자본주의의 신념이다. 불완전한 비즈니스모델이 돈 몇 억원 더 있다고 성공하지 않는다.

돈이 많던 회사가 정교한 리스크 관리 없이 실패할 때 10억원 정도의 부채는 금방 생긴다. 관성의 속도와 상실감 때문에 우물쭈물하던 창업자의 늦은 결단으로 인해 감당할 수 없는 부채가 생긴다. 돈이 많았던 것이 재앙이다.

돈이 힘이라고 생각하는가? 돈이 스타트업에는 재앙이 되기도 한다.

프라이머 대표 douglas@prime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