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셧다운제 합헌 판결이 가져올 문화심리적 부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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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강제적 셧다운제의 합헌이라는 문화사적으로 기록될만한 법적 판단이 내려졌다. ‘미성숙한 청소년이기에 규제가 합리적’이라고 결정한 헌법재판관들이 자신의 전문지식과 성숙한 양심에 따라 판단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심리학자로서 그리고 초등학생 셋을 둔 아빠로서, 실효성이 의심되는 제도에 대한 합헌 결정이 만들어낼 새로운 문화심리적 부작용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듯해 안타까울 뿐이다.

우선 첫번째 부작용은 청소년들의 성숙 기회 박탈이다. 성숙과 미성숙을 가르는 심리적 기준은 자신의 불안에 대처하는 방식에서 갈린다. 미성숙한 사람은 불안을 자신이 아닌 외부의 힘으로 해결하고자 한다. 아이들 입장에서 외부 힘의 대표적 사례는 부모다. 아이들은 자신에게 불안이 닥치면 부모를 찾는다. 그리고 부모가 어떻게 불안을 해결하는지를 보면서 스스로 그런 불안을 대처하는 방법을 하나씩 배우며 성숙한 성인이 된다.

그런데 셧다운제는 성인인 부모를 전혀 성인답지 못하게 만든다. 부모가 자녀에게 가르쳐 줘야 할 덕목을 법률적 제한이라는 ‘아웃소싱’으로 회피해 버린다. 결국 이번 판결은 청소년 뿐 아니라 부모로 대표되는 성인들 자신의 성숙 기회도 스스로 없애버린 결과를 만들어냈다.

두번째 부작용은 ‘노시보 효과(Nocebo effect)’다. 이는 더 심각한 일이다. 노시보 효과란 월터 케네디(Walter Kennedy)가 1961년에 처음 사용한 용어다. 가짜 약도 효과가 있다는 ‘플라시보 효과’의 정반대 심리현상을 말한다.

예를 들자면 멀쩡한 우유를 먹은 사람에게 2시간쯤 지나서 아까 먹은 우유가 상한 우유였다고 말하면 그 사람은 정말 배탈이 난다. 부정적인 암시가 그 방향대로 생리적 효과를 유발하는 것이다. 미성숙한 청소년들이 게임시간을 통제할 수 없다는 셧다운제 판결의 ‘노시보 효과’는 대다수 통제할 수 있는 청소년 조차도 통제가 어렵게 느끼게 될 가능성을 증폭시킨다.

세번째는 미성숙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공인된 책임회피처를 제공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을 변론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상황이다. 예전에 이런 역할을 주로 술이 담당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이런 핑계를 대면 관대하게 넘기는 것이 우리사회 정서이기도 했다.

IT강국이 되면서 이제 핑계도 IT영역까지 확대된 것이다. 자기 아이를 죽인 것도 게임 때문이고, 밥을 굶긴 것도 게임 때문이란다. “나는 순진한데 게임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그러니 이런 죄는 온전히 다 내 탓이 아니다”라는 범죄보도가 벌써부터 들끓는다. 처벌을 피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변론의 논리가 생긴 것이다. 게임 때문에 나쁜 짓을 저질렀다고 말만 하면 책임이 가벼워지는데 상식이 있는 사람이 이것을 마다할리 있을까?

마지막 부작용은 이번 판결이 게임을 더 매력적인 금단의 열매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심리는 최초 인류라는 아담과 이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최근 청소년 등급제한 효과를 다룬 연구에서 성인물 표시는 11살 이상의 남자아이와 청소년들에게 오히려 유혹의 효과를 갖는다고 한다. 그냥 두었으면 보지 않을 아이들이 보지 말라고 하니까 더 강력하게 끌리게 된다는 것이다.

강제적 셧다운제의 합헌 판결이 이런 부작용으로 이어지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랄 따름이다. 그리고 이런 판결에 힘을 받아 생겨날 법들은 이후 문화심리적 부작용까지 제발 고려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장(문화심리학 박사) zzazan0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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