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사고로 인한 실종자를 수색하기 위해 최첨단 기술을 동원했지만 안타깝게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미국에서 공수한 ‘원격수중탐색장비(ROV·Remotely-Operated Vehicle)’도, 국내에서 개발한 해저 탐사용 로봇 ‘크랩스터’도 맹골수도 해역의 빠른 조류와 혼탁한 수중상황을 극복하지 못했다.
최첨단 기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재난 등 비상사태에 대비한 로봇을 개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람을 대신해 위험한 환경에서도 구조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사람이 하는 것보다 구조 효율도 뛰어나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재난 로봇 개발에는 많은 예산과 시간을 투입해야 하지만 평상시 수요는 없다”면서도 “때문에 정부 주도로 국민 안전 로봇 프로젝트를 추진한다”고 말했다.
사고가 상시 발생하는 것이 아닌 만큼 당장 경제적 효과는 크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국민의 안전은 돈으로 계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국가적 차원에서 적극적인 지원을 해야한다는 주장이다.
이번에 세월호 구조에 활용됐던 크랩스터는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이 5개 대학과 함께 개발한 게 모양의 해저 탐사용 다관절 로봇이다. 크랩스터는 길이 2.4m, 높이 2m, 무게 650㎏의 대형 로봇으로 6개의 다리로 바닥을 짚고 움직인다. 최대 시속 3.7㎞ 조류를 극복하고, 작업할 수 있도록 개발됐다. 크랩스터는 아직 테스트가 완료되지 않았지만, 앞서 세월호 구조에 투입된 로봇들이 모두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긴급하게 투입됐다.
하지만 크랩스터는 구조용 로봇이 아닌 탐색로봇이어서 실제 구조에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고, 수중시야가 혼탁해 사진 촬영도 여의치 않았다. 다만 음파를 발사해 반사파를 감지하는 초음파 카메라 덕분에 혼탁한 수중에서도 영상을 촬영했다.
기대했던 로봇들마저 한계를 나타내면서 이참에 국민 안전을 위한 로봇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이 곳곳에서 제기된다. 이미 국내에서도 내년부터 2020년까지 6년간 국민 안전로봇 프로젝트 사업을 추진키로 하고, 현재 기획재정부 예비타당성 심사 중이다.
이 프로젝트는 국비와 지방비, 민자 예산을 합쳐 총 1215억원을 투입하는 대형 연구개발 사업이다. 프로젝트를 통해 개발할 과제는 △재난환경 긴급대응 작업 및 인명구조 로봇 △험지 이동형 고중량물 양팔 작업로봇 △재난대응 다중로봇 공조작업 통합관제 시스템이다. 경상북도와 포항시 등과 협력해 대형사고 재난대응 실증단지도 구축한다. 재난대응 실증단지는 대형사고와 재난 환경에 대한 테스트와 시뮬레이션, 로봇 통합 모니터링, 로봇 안전성 시험평가 등을 통해 재난시 대응력을 키워가는 역할을 담당한다. 하지만 국민 안전로봇 프로젝트에는 이번과 같은 해양 재난이 발생했을 때 대응할 로봇 개발은 빠져 있어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에서 해난 사고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최종 프로젝트에 이에 대한 대응 계획도 추가하자는 의견이 많다.
해외에서도 재난 대응 로봇 개발 연구가 활발하다.
미국은 지난 1995년 오클라호마주 폭탄 테러 이후 로봇 활용이 검토됐고, 9·11테러부터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MIT가 만든 벤처기업인 아이로봇(iRobot)이 대표적인 회사로, 미국에서 사용되는 지능형 로봇의 80% 이상을 제작 또는 디자인한다.
현재 미국에서 사용되는 구조용 로봇 제품도 국립연구소가 개발한 정찰&폭발물처리 로봇 ‘래틀러(RATLER)’,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2만건 이상의 폭발물 처리 임무를 완료한 ‘탤론(TALON)’, 붕괴된 건물이나 유해 화학물질 유출 현장에서 사람들을 구출하는 ‘VECNA’ 등 다양하다.
또 미국 국방부 방위고등연구계획국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계기로 ‘로보틱스 챌린지’를 열고, 재난대응 로봇의 실현 가능성을 확인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일본도 세계 최고 수준의 산업용 로봇 기술 축적을 기반으로 서비스 로봇 분야 실용화에 활발한 연구개발을 진행 중이다. 특히 지난 1995년 한신대지진을 계기로 재난·재해 관련 로봇에 대한 관심과 투자를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인명탐색 로봇, 재난 복구시 장애물 제거를 위한 로봇, 초음파 이용한 장애물 감지기능이 있는 인명 구조 및 수송 로봇 등이 사용되고 있다.
또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재해 대응 무인화 시스템 연구개발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1년간의 단기 사업을 통해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 연료봉 제거, 원자로와 건물 해체·폐로 등의 작업을 위한 사전 환경 조사와 장비 반입 등에 활용하는 성과를 냈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