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은 양날의 검(劍)이어서 잘 쓰면 득(得)이 되고 잘못 쓰면 독(毒)이 되기 십상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경제적 부를 창출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예기치 못한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거나 때로는 엄청난 재앙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정보기술(IT) 분야에서 전산화·네트워크화 기술의 발달은 실시간으로 최적의 정보 서비스를 제공해 편리성과 효율성에 기여한 바 크지만, 최근 금융사와 통신사에서 터진 개인정보 유출 사고에서 확인했듯 사회적으로 심각한 불안과 위협 요소가 된다.
이처럼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는 새로운 과학기술의 파급효과를 가능한 한 미리 예측하고 조사해 그 대응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 바로 ‘기술영향평가’라는 분야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선진국을 중심으로 과학기술에 대한 사회적 책임론이 대두됐다. 미국은 1974년 의회 내에 담당기관을 설립하고 최초로 기술영향평가를 도입했으며 2002년부터는 감사원에서 이를 수행하고 있다. 유럽은 1987년 이후 유럽의회에서 기술영향평가를 시행하고 있으며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등 국가별로도 전담기구를 둬 매년 2~4개 기술을 대상으로 기술영향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선진국보다 20~30년 늦게 기술영향평가를 도입했다. 2001년 과학기술기본법에 수행 근거를 마련하고, 2003년부터 나노·바이오·정보융합기술을 시작으로 2013년 3D 프린팅과 스마트 네트워크에 이르기까지 총 12개 기술 분야를 점검했다.
기술영향평가는 도입 목적에 따라 제도 운용 및 활용이 상이하다. 미국은 의회의 정책결정자에게 관련된 과학기술의 전문적인 정보 제공이 목적이며 북유럽 국가들은 시민이 참여한 공공의 토론 과정에서 민주적 소통과 사회적 합의를 중시한다. 우리나라의 기술영향평가 제도는 이 두 가지를 함께 추구한다.
일반적으로 과학기술자들은 과학기술 자체에 낙관적인 편이다. 새로운 과학기술로 인한 문제가 생기면 이 또한 과학기술로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반면에 사회과학자들은 과학기술의 사회적·윤리적 책임과 부정적 효과의 예방을 강조한다. 사후 대응은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지불된다는 이유에서다. 일반 대중은 과학기술의 최종 수요자 시각에서 자신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갖게 된다.
모두가 맞는 말이다. 중요한 것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모여 각각의 견해를 피력하고 충분히 의견을 교환하는 과정을 통해 더욱 발전적이고 모범적인 방안을 모색하는 일이 아닐까.
우리나라 기술영향평가 제도는 바로 이러한 목적에 부합한다. 과학기술 및 사회과학 분야 전문가들이 고루 참여하는 기술영향평가위원회와 일반 시민으로 구성된 시민포럼이 평가의 주체가 되고, 각 주체 간의 의견 교류를 위한 토론회를 진행하고 있다. 나아가 일반 시민의 의견 수렴 폭을 확대하기 위해 온라인 평가 의견을 받고 공개토론회도 개최한다.
기술영향평가의 목적은 해당 기술이 사회에 가져올 파급효과를 사전에 철저히 연구하고 분석해 긍정적인 영향은 최대화하되 부정적 영향은 최소화하는 대응방안을 제시함으로써 국가 과학기술의 건전한 발전과 사회의 안전을 도모하는 데 있다. 따라서 기술영향평가의 결과는 국가 연구개발(R&D) 사업의 연구기획에 반영되거나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여러 대책을 수립하는 데 적극 활용된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가는 과학기술이 사회 전반에 대규모·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국민의 삶의 질을 좌우할 정도로 그 파급력이 커가는 오늘날, 한 분야의 과학기술이 갖게 되는 양면성을 다양한 관점에서 분석, 평가함으로써 보다 객관적인 정보를 국민에게 제공하는 기술영향평가의 역할은 참으로 중차대하지 않을 수 없다.
오상록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강릉분원장 sroh@kist.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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