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발진 존재 인정"...도요타 천문학적 벌금 `파장`

도요타자동차가 지난해 미국 급발진 소송에서 패소하고, 법무부 조사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벌금을 문 것은 ‘SW 결함으로 인한 급발진’을 실험으로 증명한 보고서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급발진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던 국내 자동차 업계 관행에도 변화가 일어날 전망이다. 특히 이번 급발진의 원인이 소프트웨어(SW) 결함으로 밝혀지면서 자동차 산업계가 SW의 중요성을 재인식하는 계기가 될 지 주목된다.

20일 전자신문이 단독으로 입수한 바(BARR) 그룹의 도요타 급발진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캠리의 엔진 스로틀 컨트롤 시스템(ETCS)의 SW 결함이 급발진을 일으켰다. 보고서는 ETCS 전자제어장치(ECU)에 내장된 SW에 오류(버그)가 있었고, 오류가 있더라도 이를 커버해주는 방어수단(fail safes)도 작동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바 그룹의 조사보고서는 지난해 10월 미국 오클라호마주 급발진 소송에서 도요타가 패소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도요타는 이 재판에서 피해자에게 300만달러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했다. 또 19일(현지시각) 도요타는 미국 법무부와 4년간의 급발진 관련 수사 종결에 합의하면서 벌금 12억달러(1조2800억원)를 부과받았다.

바(BARR) 그룹은 미국의 민간 SW 컨설팅 업체로 지난 2012년 미국 의회의 의뢰를 받은 항공우주국(NASA)이 도요타 캠리 급발진 원인을 밝혀내는데 실패하자 재차 조사를 벌여 SW 결함을 입증했다. 또 이를 법원이 인정했다는 것이 골자다.

SW 오류는 ECU 내 메모리 영역에서 일어났다. SW끼리 정보를 주고받을 때 특정 메모리 영역을 공유하는데, 이 공유 지점에서 간섭 현상이 일어나 ETCS에 잘못된 지시가 내려졌고 이것이 급발진으로 이어졌다.

특히 바 그룹은 이 같은 설명을 실험으로 증명해(Confirmed in test) 법원을 움직이는데 성공했다. 보고서에는 ‘30초 동안 의도하지 않은 가속이 일어났다’고 적혀 있다. 인위적으로 급발진을 일으키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는 그동안 급발진은 존재하지 않고, 재현도 불가능하다는 국내외 자동차 업계의 암묵적 동의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다.

세계 자동차 관련 제도에 척도가 되고 있는 미국 법원에서 공식적·기술적으로 급발진의 존재가 인정됐다는 점에서 국내 급발진 의심 사고 조사에도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게 전문가 견해다.

특히 그동안 기계 부품을 보조하는 부수적 존재로만 여겨지던 차량 SW 품질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차량 SW 전문가는 “도요타가 천문학적 벌금을 문 이번 사건은 차량 SW 품질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해주고 있다”면서 “차량 SW 인력 양성 등 관련 인프라 구축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용주기자 kyj@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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