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재난안전무선통신망(이하 재난망) 사업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일부 공공기관이 자체적으로 시스템 고도화를 검토한다. 노후화된 통신장비로 인해 업무 효율성 저하와 도청에 의한 보안사고 등 현장 공백이 커졌기 때문이다. 관계 당국의 복지부동으로 우려하던 중복투자 가능성은 물론이고 재난망이 기관별로 제각각 구축되면서 유사시 다시 호환이 안 돼 대형 인명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19일 무선통신업계에 따르면 부산교통공사는 부산지하철 1호선에 새로운 무선통신망을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연장 구간인 다대선(신평차량기지~다대포해수욕장)에 무선통신망이 필요한데 기존 구간과 통신망이 다르면 안 되기 때문에 이참에 전 노선에 신규 통신시스템을 설치하기로 했다. 어떤 기술을 사용할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부산지하철 1호선은 1985년 개통됐다. 30년 가까이 초단파(VHF) 형태의 오래된 통신 기술을 써왔다. 장애가 발생하면 자체 정비로 그때그때 문제를 해결한다. 시스템이 낡아 휴대 무전기를 쓰지 못하다가 몇 번 사고가 나면서 2012년 무전기 40여대를 지급했다. 자체 망이 아닌 경찰 무선망을 쓰는 방식이다.
통신망 설치사업 발주 시점은 오는 7월께다. 올해 안에 계약을 마무리하는 게 목표다. 사업자가 선정된 이후 재난망 사업 추진이 결정되면 중복투자가 될 수 있다는 게 부산교통공사의 고민이다. 재난망 사업 범주에 속하는 300여 기관과 지자체가 낡은 장비를 고도화하지 못하는 이유다.
부산교통공사 관계자는 “7월 발주 전까지 재난망과 관련해 확실한 결론이 나는 게 우리로서는 가장 바람직하다”며 “중복투자를 막기 위해 관계 부처와 계속 협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A지방경찰청은 최신 테트라 통신시스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2000년 초반 설치한 시스템이 내구연한 10년을 넘기면서 최신 장비로 업그레이드가 절실한 상황이다. 대규모 경호가 필요한 행사를 치를 때마다 시스템 용량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관계자의 전언이다. 최근엔 통신망 운영 문제 때문에 업무에 큰 곤란을 겪기도 했다.
해당 경찰청 관계자는 “현재 통신시스템은 한 기지국이 수용할 수 있는 최다 인원이 2000명밖에 되지 않아 업무에 불편함이 있다”며 “굵직굵직한 행사가 있을 때마다 용량 증대가 필요한 부분은 임시로 보강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찰은 재난망의 핵심 사용기관이다. 서울과 경기지방경찰청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다수 경찰청이 2002년 이전 인프라를 쓴다. 5곳은 1990년대 설치한 인프라와 VHF 통신방식을 사용한다. 보안에 취약한 기술이기 때문에 수시로 도·감청이 일어난다. 충분한 사용자 수용이 어렵고 안정성이 떨어져 재난망의 목적인 일사불란한 통합 지휘체계는 기대하기 힘들다.
경남, 충남, 대전 등 대부분 지역 소방본부는 국고보조금이 아닌 지자체 예산을 편성해 디지털 무전기 교체 사업을 벌인다. 2010년 부산소방본부 사례처럼 현실로 드러난 사설 응급구조 업체의 도청을 막기 위해서다. 통신망을 설치하기는 어려우니 무전기라도 교체하는 임시방편을 쓰는 셈이다.
한 무선통신업체 관계자는 “통신시스템 내구연한이 10년 정도기 때문에 이미 대부분 지자체와 관공서가 사용 기한이 지난 장비를 쓰고 있는 실정”이라며 “올해 재난망 예산이 책정되더라도 본격적 구축은 2016년이나 돼야 하기 때문에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체 시스템 고도화를 검토하는 기관이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자체 시스템 고도화 검토하는 기관 / 자료:각 기관 및 업계 종합>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