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휴대폰 보조금은 민생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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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사람도 속고, 아버지도 속았다. 지난달 아이들 휴대폰을 싸게 구매했다며 좋아했던 아내는 “화가 난다”며 얼굴을 붉혔다. 아버지가 바꾼 새 스마트폰 가격을 듣고는 분노가 치밀었다. 아내는 출고가보다 30만원이나 싸게, 아버지도 20만원 저렴하게 구매했지만 결국 속은 셈이었다.

지난 11일 언론 보도를 접한 사람 대부분은 사기를 당한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간밤에 뿌려진 보조금으로 단말기를 아예 공짜로 받고, 현금까지 덤으로 받았다는 뉴스에 배가 아팠을 거다. 게릴라 보조금을 놓치지 않으려고 추운 새벽 두터운 외투를 입은 사람들이 대리점 앞에서 100m나 줄을 서는 기막힌 풍경도 연출됐다. 이 사실은 뒤늦게 안 젊은이들은 “아까운 기회를 놓쳤다”며 탄식했다.

‘휴대폰 최강국’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가장 불투명한 휴대폰 유통시장을 가졌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인터넷을 뒤지고, 발품을 팔고 완벽한 시장조사를 마친 뒤에도 이른바 ‘호갱님(어수룩한 고객)’으로 낚이기 일쑤다. 중국 여행객이 현지 상인에게 속아 바가지를 쓰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문제는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이나 사회적 약자가 당하기 더 쉽다는 것이다. 나이 든 부모님이 휴대폰을 바꿨다면 가슴부터 쓸어내릴 정도로 우리 휴대폰 시장은 복마전이다. 부모님이 피싱 사기를 당할까 노심초사하는 것처럼 휴대폰 호갱님으로 낚일까 걱정해야 한다. 오죽했으면 대통령이 올해 업무보고 자리에서 “이런 일이 계속 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을까.

소비자 차별이 횡행하는 휴대폰 유통구조는 국회도 성토했던 문제다. 의원들이 ‘호갱 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정부를 질책하고 몰아붙였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단통법)이다. 보조금 투명화로 소비자 차별을 없애겠다는 것이 단통법의 골자다. 정부는 음성적인 보조금이 사라지면 모든 사람이 혜택을 볼 수 있는 요금제와 서비스 경쟁도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런데 단통법은 역설적으로 국회에서 발목이 잡혔다. 지난 정기국회부터 법안처리 ‘0’건이라는 오명을 안고 있는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가 2월 임시국회에서도 식물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보보안 강화를 위한 ‘정보통신망법’ 등 일부 법안이 지난 18일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했지만 ‘방송 공정성 확보’ 방안을 두고 여야 간 대치가 이어지면서 다른 법안은 의제로 다뤄지지도 못했다. 4월과 6월 임시국회가 있지만, 지방선거로 국회는 개점휴업 상태가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법안이 흐지부지되는 것이 시간문제라는 이야기가 벌써부터 나온다.

국민이 휴대폰을 살 때마다 속을까 안절부절못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을 국회가 앞장서 풀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는 게 어불성설이다. 단통법을 둘러싸고 통신사와 제조사의 이견이 없는 것도 아니다. 단말기 원가 공개와 같은 첨예한 문제는 보완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때문에 국회의 조율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1인 1휴대폰 시대다. 휴대폰 가격은 가계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민생 문제다. 민생을 내팽개치는 국회는 아무리 ‘방송 공정성 확보’라는 대의를 내세워도 지탄받을 수밖에 없다. 이제 2월 국회도 사흘밖에 남지 않았다. 4000만이 호갱으로 내몰리는 비정상에 눈을 감아서는 안 된다. 국민들이 두 눈 뜨고 지켜보고 있다.


장지영 ICT방송산업부장 jya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