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금 빗나간 제재 논란…영업정지 피해 유통과 제조사가 직격탄

정부가 검토 중인 불법 보조금 제재가 통신사가 아닌 휴대폰 제조사와 유통업계에 더욱 치명적일 것으로 예상돼 ‘빗나간 규제 논란’이 일고 있다. 현재 유력하게 거론되는 통신사 영업정지 방안이 현실화되면 통신사는 보조금 등 마케팅비를 아껴 손해 볼 것이 없는 반면에 제조사와 유통업계는 매출 감소 직격탄을 맞기 때문이다. 특히 팬택처럼 내수시장에 의존하는 제조사는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피해가 예상됐다. 불법 보조금 진원지인 통신사엔 정작 솜방망이인 처벌이 오히려 보조금 과다 전쟁의 내성만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규제 정책이 더욱 정교해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1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통신사 영업정지로 유통과 제조사의 피해가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반대로 제재 대상인 이동통신사에는 영업정지가 되레 호재라는 분석이다.

통신사는 영업정지 기간 동안 보조금을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비용이 줄어 수익성이 좋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포화상태인 국내 이동통신 시장에서는 영업정지가 효과가 없다는 분석이다. 가입자 유치 경쟁이 없어도 가입자와 매출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증권사들은 영업정지로 인해 가입자 유치 경쟁이 완화되고, 마케팅 비용이 감소해 통신사 주가가 오를 것이라는 전망을 잇달아 제시했다.

김장원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제재가 내려지면 보조금 경쟁은 약해질 것이고, 이는 주가 반등의 신호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양종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도 “제재는 주가에 긍정적일 것”이라며 “가입자 유치 경쟁이 급격히 완화돼 마케팅 비용이 감소하고, 2개 업체 순차 영업정지를 단행하면 경쟁 강도가 대폭 약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에 대리점과 판매점 등 유통업계와 휴대폰 제조사는 영업정지로 인한 피해가 심각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정부가 논의 중인 제재안이 △2개 통신사 동시 영업정지 △신규가입·번호이동·기기변경 금지 등 기존 영업정지에 비해 한층 강화된 수준이어서 피해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통신사 대리점은 1개월의 영업정지 기간 동안 매출이 거의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기기변경까지 제한하면 매출을 낼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제조사 역시 심각한 피해를 받는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수출 비중이 높아 버틸 수 있지만, 내수 비중이 높은 팬택은 직격탄이 될 수 있다. 실적 악화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팬택은 영업정지에 따른 국내 매출 축소가 현실화되면 심각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제조사 한 관계자는 “1개 통신사만 영업하게 되면 판매량이 평소의 4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 때문에 영업정지보다 실효성 있는 통신사 제재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또 영업정지를 결정하더라도 보조금 대란의 주범인 번호이동만 규제하고, 신규가입이나 기기변경은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기기변경 허용은 선량한 소비자의 권리 보호라는 측면도 있다.

장중혁 애틀러스리서치앤컨설팅 부사장은 “보조금 대란의 근본적인 원인은 통신요금과 단말기 가격에 거품이 많기 때문”이라며 “부풀려진 만큼 보조금 재원으로 쓰면서 시장을 끌고 가는 것인데, 그 거품을 빼는 역할이 실질적인 제재”라고 말했다. 장 부사장은 “영업정지는 거품을 빼는 제재가 아니다”면서 “보조금 혜택을 못 본 간접적 피해자인 기존 가입자에게 보상 등을 통해 피해를 보전해주는 쪽으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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