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0월 부산에서 열리는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전권회의`의 가장 뜨거운 안건으로 꼽히는 인터넷 거버넌스 개편을 놓고 국가 간 대립이 가열됐다.
4월 브라질에서 개최되는 인터넷 국제회의를 `전초전`으로 미국이 주도해온 거버넌스 개편 논의가 뜨거운 쟁점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인터넷 거버넌스란 주소(도메인) 관리·배분 권한을 핵심으로 하는 인터넷 통제 체제를 의미한다. 지금은 미국 주도 민간 기구인 국제인터넷주소관리기구(ICANN)가 권한 대부분을 가지고 있다. 이를 유지하려는 미국 등의 국가와 중립적 정부기구인 ITU에 관할권을 넘겨야 한다는 국가가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특히 미국 정부기관의 정보 감시 행태가 폭로되면서 인터넷산업 후발 국가의 개편 주장이 더욱 힘을 받는 양상이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4월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열리는 `인터넷 거버넌스의 미래에 관한 다중 이해관계자 회의`에서 △보편적 인터넷 원칙 △다양한 이해관계자(multi-stakeholder) 기반 인터넷 거버넌스를 위한 제도적 틀을 논의하기로 하면서 각 진영 의견이 치열하게 대립할 전망이다.
인터넷 거버넌스를 놓고 벌어지는 대립은 겉으로는 `민간 중심`과 `정부기구 역할 강화` 간 충돌이다. 하지만 내막은 현재 인터넷 거버넌스를 독차지하고 있는 미국 측에 중국·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후발 세력이 도전하는 형국이다. 지난 2012년 두바이에서 열린 국제전기통신세계회의에서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89개국이 ITU 역할론에 찬성표를 던졌지만 미국을 포함한 20개 국가가 서명을 하지 않아 채택이 무산됐다.
한 전문가는 “명분 없는 거부지만 힘이 있기에 가능한 보이콧이었다”고 설명했다.
논란의 시작은 인터넷이 본격 확산된 1990년대 후반부터다. 미국과 정치적으로 대립하는 중국·러시아·중동 등지에서 `미국 정부 산하기관인 ICANN이 인터넷 주소통제권을 가지고 있어 닷시엔(.cn), 닷아르유(.ru) 도메인을 없애기만 하면 국가가 마비된다`는 위기감이 고조됐다.
박윤정 한국뉴욕주립대 교수는 “인터넷 경제 사회에서 주소통제권은 핵폭탄에 버금가는 위력을 지닌다”고 지적했다.
미국 정부가 ICANN을 민간 자율 기구로 바꾸며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2011년 ICANN이 새 인터넷 주소 정책을 독단 처리하자 다시 반발이 불거졌다. 국제 민간 기구라고 해도 미국 정부의 직접 영향을 받는 ICANN 이사회가 자국 이익을 위한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이후 지난해 미국 정부기관인 NSA의 도·감청이 스노든에 의해 폭로되면서 미국 중심 체제에 대한 반발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ITU 역할론에는 서명을 거부했던 유럽도 미국 중심 거버넌스에는 공식 반대 방침을 정했다. 12일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도메인 할당 등 필수 인터넷 거버넌스 기능의 세계화를 위한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단계` 채택을 핵심으로 한 정책 제안에 나설 예정이다. 아직도 미국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ICANN의 `완전한 세계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입수한 정책 초안에는 “미국에 의한 대규모 정보 감시와 정보활동은 인터넷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렸다”며 “현재의 인터넷 거버넌스 구조에 대한 믿음도 동시에 사라졌다”고 명시돼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ICANN과는 달리 ITU는 1국 1표의 국제기구다. 오는 10월 부산 ITU 전권회의에서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국제법 격인 ITU 헌장이 인터넷을 관할하는 것으로 개정되면 ICANN 중심 체제에서 대변화가 불가피하다.
이 때문에 4월 브라질 회의는 각 진영이 명분을 수립하는 `ITU 전권회의 전초전` 성격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ICANN 내 `정부 자문단`의 역할을 강화하는 정도의 중재안으로 설득 작업에 나설 것으로 예상됐다.
미래창조과학부 관계자는 “우리 정부는 일단 5월까지는 지켜보자는 상황”이라며 다소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인터넷 거버넌스 ICANN vs ITU
황태호기자 thhwang@etnews.com,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