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출연연구기관이 `방만경영 정상화 방안`과 `혁신 계획안` 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전제는 비정상(非正常) 상태라는 것이다.
지난해 기재부에서 하달한 문서가 미래부에 돌직구로 떨어졌다. 이달 말까지 `비정상의 정상화 계획안`을 제출하라는 요구다.
사실 기타공공기관에 포함돼 있는 출연연은 연구개발(R&D)이 주미션이어서 수익형 공공기관과는 차이가 많다. 운용예산이 몇 조원씩 되는 것도 아니다. 자녀 대학학자금 지원 같은 혜택도 없다.
기관장 연봉이 시장형 공기업들처럼 수억원씩 되는 것도 아니다. 지난해 말 위탁집행형 준정부기관에 들어있는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이 과도한 복리후생비를 지출했다고 지적받은 것이 유일하다.
단합된 조직도, 자금 줄도 없는 출연연은 지난 1997년 IMF가 터지면서 갖고 있던 콘도나 골프 회원권, 사택 등은 전부 내다 팔았다. 구조조정도 다른 곳보다 더 심했으면 심했지, 덜하지도 않았다.
그러다보니 정부 정상화 주문에 그다지 대응할 것도 없다. 이공계 기피현상이 극심한 상황에서 사기진작을 위해 혜택이라도 줘보자는 취지로 일부 복지제도를 기관별로 시행해 온 게 전부다.
이번 여파로 그나마 조금 갖고 있던 것마저 모두 날아가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노조가 가만있을 리 없다. 노조에서는 `노사합의사항`에 대해 절대 양보하지 않겠다고 전의를 불태우고 있어 일촉즉발의 위기감마저 감돈다.
미래부 장관은 장관대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 달 중순 ETRI를 찾아 출연연 기관장들을 믿지 못하겠다고 공개 선언하고, 출연연 방문 길에 올랐다. 바쁜 와중에 6일까지 연구원들을 직접 상대한 기관이 ETRI를 시작으로 한국표준과학연구원과 한국화학연구원,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전기연구원, 재료연구원 등 10곳이 훌쩍 넘는다.
방문땐 여지없이 진심인지 독려용인지 아리송한 `독설`을 섞어가며 나무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기관 혁신보고 행사는 지금도 모두 비공개로 진행 중이다.
정부방침의 잘잘못 여부를 꼬집자는 것이 아니다. 정확히 들여다보고, 처지를 따져보자는 것이다. 바른 분석이 있어야 바른 해결책이 나오기 때문이다.
출연연도 스스로 바꿔야할 부문이 전혀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장관에게 보고한 기관별 혁신안을 입수해보니, 대부분 오는 2020년 또는 2025년까지 비전과 성장동력 아이템, 중소기업 육성 및 지원방안 등을 빼곡히 담아 놨다. 하지만, 상당부분이 현실성이 떨어져 보였다. 예를 들면 오는 2020년까지 핵심기술을 개발하고, 글로벌 강소기업 10개를 키워 일자리 1000개를 만들겠다는 것 등이다.
그런 비전제시와 약속은 이미 모든 출연연들이 기관장 선임될 때마다 내놨던 내용이다. 그게 다 지켜졌다면, 우린 이미 세계 초일류국가 반열에 올랐어야 한다. 이 때문에 일부이긴 하지만, 기관장이 경영혁신을 위해 내놓은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경우엔 추적평가를 통해 향후에라도 기관에 강력한 패널티를 줘야 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사실 이번 방만경영 정상화 주문은 부채많은 공기업이 주대상이다. 과학기술계가 벤치마킹 했다는 독일의 연구회 조직인 프라운호퍼나 막스플랑크도 이 같은 출연연 정상화 몸살을 앓았는지 궁금하다.
고사에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이란 말이 있다. 중국 태산을 울려 세상을 떠들썩하게 움직였는데 나온 게 고작 쥐 한 마리밖에 없다는 얘기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을 흔들었는데, 나올 것이나 해당사항이 별로 없다면 벼룩 잡으려다 괜스레 초가삼간 다 태우는 격과 다를 바 없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