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신임 원장 선임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업무 공백이 심각하다. 시기상 올해 본격적으로 연구 개발과 핵심 사업에 시동을 걸어야 하지만 아직도 뚜렷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 원장 공석으로 정부 출연연구소 `맏형`이자 `창조경제 브레인`으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주무 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는 물론이고 청와대까지 화살이 빗발치지만 정작 해당 부처는 묵묵부답으로 시간만 허비하는 상황이다.
KIST가 3개월째 원장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전임 문길주 원장이 11월을 끝으로 임기를 마쳤지만 뚜렷한 이유 없이 원장 선임이 늦춰지고 있다. 업무 인계 과정에서 1개월가량 차질을 빚은 적은 있지만 이처럼 장기화된 경우는 KIST 설립 이 후 처음이다. 더 큰 문제는 이미 이사회 등을 거쳐 삼배수로 압축되었지만 결정을 내리지 못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인사권을 가진 기초기술연구회는 지난해 말 이사회를 거쳐 KIST 원장 후보로 최종 세 명을 선임했다. 김낙중 한양대 화학과 교수와 이병권 KIST 부원장, 정윤철 KIST 책임연구원이 최종 후보로 뽑혔다.
김낙중 교수는 서울대 졸업 후 미국 텍사스대 오스틴캠퍼스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한화학회장을 역임했다. 이병권 부원장은 서울대 졸업 후 미국 애크런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KIST 책임연구원, 출연연 발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정윤철 KIST 책임연구원은 서울대 졸업 후 미국 UCLA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KIST 연구조정부장, 한국연구재단 국책연구본부장을 거쳤다. 이사회에서 내부 출신 2명 후보와 외부에서 후보 1명을 추린 것이다.
문제는 삼배수 후보 선임까지 끝났지만 정작 최종 결정이 무기한 연기됐다. 뒤늦게 공모에 들어간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지난달 신임 원장을 선임해 대조를 이룬다. 이사회까지 거쳐 최종 후보를 압축한 이후 벌써 두 달이 넘어 가도록 최종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결격 사유가 분명한 후보를 고집해 불필요한 공백이 이어지고 있다는 믿거나 말거나 식 루머까지 나돌고 있다. 미래부와 이사회 측은 후보 인물의 인사 검증이 끝나지 않아 선임 절차가 미뤄지고 있다는 궁색한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만만디 인사`가 일반화됐지만 이미 최종 후보까지 선임한 상태에서 명확한 이유 없이 3개월째 공백이 이어지면서 창조경제 브레인 역할을 해야 할 KIST가 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1960년대 초반 과학기술진흥 5개년 계획과 맞물려 1966년 설립한 KIST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공업화 과정에서 과학기술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설립한 유일무이한 국가 출연연구소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국내 산업 활동의 기초 조사와 중화학 공업의 정책 수립에 공헌했고 1980년대에 산업 발전 핵심 기술을, 1990년대부터 첨단 원천기술 개발을 선도했다. 많은 해외 과학자를 유치하고 우수한 과학자를 다수 배출하는 등 50년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역사와 맥을 같이 했다.
KIST에서 분사한 기관 만해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을 비롯해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 한국에너지연구원, 한국화학연구원, 한국해양연구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한국생산기술연구원, 한국기계연구원 등이 있을 정도로 상징적인 연구기관이며 지금도 정부 출연연구기관의 맏형으로 불리고 있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