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블랙엔젤' 잡으려다 시장 다 죽는다

겉도는 엔젤투자 해법은

창업 기업은 기술, 시장, 경영 측면을 고려해 다단계 투자 유치 전략을 세운다. 성공기업의 경우 회사 설립 이후 기업공개에 나설 때까지 통상 4~5회 정도 투자를 유치한다. 사업 초기 1~2차례의 개인 투자를 비롯해 최소 2차례 이상의 벤처캐피털과 국내외 기관 투자가로부터 투자를 받는다. 이 기간 벤처기업 가치는 50~100배 이상 성장하는 사례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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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3년 이내 초기 투자가 늘기는 했지만, 여전히 국내 벤처캐피털 투자동향을 보면 벤처펀드의 특성상 2~3년 내에 투자회수가 가능한 프로젝트를 우선 검토대상으로 삼는다. 사업팀 구성이 완벽하고 기술 경쟁력이 있으며, 해당 기술이나 제품의 시장성도 갖춘 기업을 찾는다. 고위험을 감수한 고수익보다 최소한의 위험으로 수년 내에 수익을 본다는 투자전략이다.

하지만 창업 초기에는 검토 사항 중 많은 부분을 충족할 수 없기 때문에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벤처캐피털 투자를 받기가 불가능하다. 초기 단계 기업이 당면하고 있거나 잠재되어 있는 위험요소는 많은 반면 매출이 없거나 적은 상태에서 기업의 시장가치를 객관적으로 측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단계에 필요한 것이 엔젤 투자자다. `마음씨 좋은 조력자`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용어로 기술과 아이디어는 있으나 자금력을 갖추기 어려운 창업 초기 기업에 투자하고 경영 자문도 하면서 성공적으로 성장시킨 후 투자 이익을 회수하는 개인 투자자를 일컫는다.

일반적으로 엔젤 투자자는 직업이나 투자 목적에 따라 세 개 그룹 정도로 구분한다. 본질적 의미의 엔젤투자자인 학자, 변호사, 공인회계사, 벤처캐피털리스트, 벤처기업의 CEO 등 자신의 풍부한 벤처기업 경험을 바탕으로 투자를 하는 전문가그룹이다. 다음으로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워 고수익을 추구하는 사채업자, 부동산사업자, 증권투자자 등 자본가그룹이 이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약간의 여유자금을 운영하기 위해 참여하는 직장인 등의 개인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일부 블랙엔젤처럼 투자기업의 성장 지원보다 단기 차익을 겨냥한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엔젤투자자는 벤처산업이 발달한 국가들에서는 어김없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엔젤 시장에 파리(블랙엔젤)가 떴다

엔젤투자가는 최근 가장 경계하는 속설 중 하나가 `맛있는 음식에 파리가 꼬인다`는 것이다. 시장 활성화가 일어나는 시점에 부정적인 사건이 찬물을 끼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작년 말 활성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엔젤시장에는 아찔한 사고가 발생했다.

작년 12월 30일 검찰이 브로커가 낀 엔젤투자 사기단을 적발해 관련자를 기소한 것이다. 사기단은 사채업자에게 빌린 3억원을 엔젤투자금 명목으로 납입했다. 이어 엔젤투자 매칭펀드 투자를 신청했다. 엔젤투자를 유치한 기업이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매칭펀드가 같은 금액을 투자한다는 규정을 악용한 것이다. 엔젤 투자금은 펀드자금이 납입된 뒤 사채업자에게 되돌아갔고 브로커는 수수료를 챙겼다. 당시 적발된 9개 벤처사와 3명의 브로커는 같은 수법으로 엔젤매칭펀드 13억8500만원, 중소기업청 보조금 3억5000만 원 등 모두 17여억원을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이 사건은 엔젤매칭펀드를 관리하는 중소기업청이 관련 제보를 입수해 추적,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 것이다. 하지만 수사를 마친 검찰이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이 사건은 `가짜 엔젤펀드`나 `엔젤투자 사기` 등으로 확산되며 엔젤투자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 즉 블랙엔젤에 대한 우려를 만들어냈다.

사건이 알려져 엔젤투자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염려했던 중기청의 걱정이 현실화됐던 셈이다. 이후 중기청 등 관련기관은 검찰, 블랙엔젤 등 부정적인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엔젤투자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굳어지는 것을 우려했다. 정부가 엔젤매칭펀드를 결성하고 세제 혜택을 늘리는 등 엔젤투자 활성화에 나서고, 전문가들이 참여한 엔젤투자클럽 결성과 활동이 증가하는 가운데 벌어진 사건이라는 점에서 더 많은 걱정을 샀다.

결론적으로 이 사건으로 인해 중기청과 관련 기관이 우려한 부정적인 시각은 길게 부각되지 않았다. 사건의 본질이 엔젤투자의 구조적인 문제라기보다 일부의 일탈(사기)로 인한 것으로 치부됐기 때문이다. 더 다행인 것은 이런 사기사건이 사후관리 강화 등으로 보완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엔젤투자에서 블랙엔젤에 대한 대비책 마련의 필요성을 환기시켰다.

◇규제보다 활성화가 우선

최근 사건과 관련해 벤처업계 전반은 엔젤투자 활성화 정책이 빛을 보기 전에 규제부터 강화되는 것이 아니냐를 우려하고 있다. 세액 공제 확대 등 더 많은 활성화 정책이 필요한데 자칫 지원보다 규제가 우선돼 엔젤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지표가 나아질 조짐을 보이지만, 국내 엔젤투자는 여전히 극심한 침체기를 벗어나지 못했다. 작년 벤처펀드 투자는 755건, 1조3845억원으로 2000년 2조211억원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투자 건수로 비교해도 벤처붐이 한창이던 1999년(1457건), 2000년(1910건), 2001년(1119건)을 제외하고 가장 크다. 벤처 버블 막바지인 2002년(768건)과 비슷한 수준이다.

반면 작년 엔젤투자액은 241억7000만원에 그쳤다. 2000년 엔젤투자액 5493억원과 비교해도 4.4%에 불과하다. 특히 작년 벤처펀드투자액과 비교하면 1.75%에 불과한 금액이다. 같은 기간 벤처투자액은 회복됐지만, 엔젤투자액은 2000년 이후 매년 감소하며 대조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작년 각종 엔젤투자 활성화 대책이 나오면서 분위기가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 실제 정부는 작년 엔젤투자자가 대폭 늘어나는 등 엔젤투자 활성화의 긍정적 지표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엔젤투자센터에 등록된 작년 엔젤투자자가 2012년에 비해 2260명이 증가한 4870명을 기록했다. 숫자뿐 아니라 엔젤투자자들의 전문성도 크게 높아졌다. 2000년 대 초반 묻지마식 투자에 나섰던 투자자들과 달리 네트워킹과 멘토링까지 가능한 전문가들이 상당수다.

작년 10월 중소기업청이 실시한 `엔젤투자 확대 의향에 대한 설문조사`에서도 엔젤투자자의 52%가 향후 투자 규모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조사시점이 엔젤투자 세제확대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않은 시점이었다는 점에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 이후 시장에서는 엔젤투자에 대한 전반적인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김광희 중소기업연구원 박사는 “엔젤투자는 아직 건전성 보다는 투자 활성화에 초점을 맞춰야 할 시기”라며 “중소기업에 480조원의 자금이 투입되는데 엔젤투자액은 250억원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고급인력이 창업마인드를 가지게 하기 위해서는 자금의 여유를 가지고 활성화를 시켜야 한다”며 “건전성을 위해서는 사후적으로 제재를 가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지적했다. 신중경 아산나눔재단 연구위원도 “엔젤투자의 건전성과 활성화를 고민하는 것은 아직 이른감이 있다”며 “오히려 엔젤투자가 매력적이라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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