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삼성 출신 인력, 한국 IT산업 장악…성공 DNA or 관리의 삼성 문화 확산?

경쟁사로 이직한 임원들, 논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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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이미 평평해졌다. 자유무역 시대가 열리면서 자본은 물론이고 인력도 국경에 상관없이 넘나든다. 미국 구글에서 핵심 기술을 담당하던 임원이 중국 샤오미로 이직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심지어 경쟁사로 핵심 인력이 옮기는 일도 빈번하다. 지난해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연구진 이직을 놓고 법정 공방을 벌인 것이 대표적이다. 인력 이동은 핵심 기술 유출 등 다양한 문제를 낳았다. 기업들은 인력 이직에 따른 기술 유출 문제뿐 아니라 퇴직자 관리 등 위험 요소 사전 차단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최근 정보기술(IT) 업계에서 대기업은 물론이고 중소·중견기업에서도 경쟁사 출신 핵심 임원을 만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해당 임원이 가진 경험과 노하우를 활용해 단시간에 회사 경쟁력을 높이는 데 용이하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서도 삼성 출신은 더욱 인기가 많다. 반도체·디스플레이·휴대폰·가전 등 다양한 IT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지닌 기업이다 보니 아무래도 삼성 선호 현상이 두드러진다. 지난 2012년 한국거래소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상장 기업 중 외부에서 최고경영자(CEO)를 데려온 경우 삼성 출신 비중이 10%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헤드헌터 회사에 CEO나 임원을 의뢰하는 기업 가운데 30%가량은 삼성 출신을 요구한다고 한다.

두산은 지난해 제일모직 정보통신소재사업부 동현수 전무를 전자비즈니스그룹장으로 영입했다. 동부그룹은 대우전자를 인수하면서 삼성 출신 전문경영인 이재형 부회장에게 대표를 맡겼다. 동부 대표이사에도 삼성 출신 허기열 전 한국타이어 사장을 선임했다. 허 사장은 삼성전자 국내영업마케팅팀장(상무), 중국영업총괄 (부사장) 등을 거쳐 2007년부터 한국타이어 한국본부장과 중국본부장(사장) 등을 지낸 인물이다. 동부그룹에서 외부 수혈한 임원 중 절반 이상이 삼성 출신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출신 인력들은 국내 소재·부품 산업에도 뿌리를 내렸다. 최근 소재부품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업 파트론의 김종구 사장이 대표적이다. 김 사장은 삼성전기 부사장 출신으로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사업을 진두지휘했던 인물이다.

배철한 인터플렉스 사장, 심임수 일진디스플레이 부회장도 소재·부품 시장에서 성공한 삼성맨으로 꼽힌다. 배 사장은 삼성SDI 부사장 출신으로 지난 2007년 인터플렉스 대표로 취임한 뒤 회사를 연성인쇄회로기판(FPCB) 업계 1위로 올려놨다. 심 부회장도 삼성SDI 부사장 출신이다. 지난 2008년 매출액 98억원에 불과했던 회사를 5년 만에 7000억~8000억원대로 키웠다. 손을재 아이엠 사장, 이성철 에스맥 사장, 이봉우 전 멜파스 사장 등 중견 기업 CEO도 삼성 임원 출신이다.

문제는 동종 업종에서 경쟁사로 이직하는 경우다. 최근 SK하이닉스는 경쟁력 강화를 위해 삼성전자 반도체 출신 인력을 대거 영입했다.

임형규 전 삼성종합기술원장이 대표적이다. SK그룹은 삼성전자가 반도체 경쟁업체인 점을 감안해 임 부회장을 SK하이닉스가 아닌 SK텔레콤에 배치했다. 임 부회장은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플로리다대 전자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삼성 `테크노 CEO` 출신이다. 삼성전자에서 시스템LSI 전문가로 통했다. 지난 2000년부터 2003년까지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장을 맡아 시스템반도체 사업의 기틀을 다졌다.

그는 향후 SK텔레콤에서 자회사 SK하이닉스를 메모리 회사에서 종합반도체 회사로 변모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시스템LSI 부사장 출신인 서광벽 사장도 최근 SK하이닉스 시스템사업부장으로 영입됐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삼성전자 펠로 출신인 오세용 사장을 영입해 메모리 사업 경쟁력을 강화한 바 있다. 이로써 SK하이닉스 내 메모리와 시스템반도체 사업부장을 모두 삼성전자 반도체 출신이 맡게 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앞서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가 핵심 인력 이직을 놓고 법정 분쟁을 벌인 것처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사이에도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다만 SK하이닉스로 영입된 인력이 삼성전자를 떠난 지 오래된 만큼 법적인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핵심 임원의 경쟁사 이직이 잦아지면서 해당 기업은 인력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공들여 양성한 핵심 인력의 역량이 자칫 자사를 위협하는 경쟁사의 무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민감한 곳은 자사 출신 인력이 외부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이직자·퇴직자로 인한 기술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연구개발(R&D) 부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은 경우 2~3년간 경쟁사로 취업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특별 관리 인물은 상당 금액의 보상금을 지급하는 대신 경쟁사로 취업하지 못하도록 계약을 하기도 한다.

일반 임원도 퇴직 후 1~3년 동안 고문직을 맡겨 차량뿐 아니라 일정 금액 이상의 급여를 제공한다. 다른 대기업들도 삼성전자와 비슷한 제도를 운용하면서 퇴직·이직자 관리를 강화하는 추세다.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퇴직·이직자 관리에는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 경쟁사가 엄청난 금액을 제시하면서 이직을 제안하는 때다.

최근에는 중국 업체들이 기술 및 사업 노하우 확보를 위해 삼성 출신 인력에 공을 들이고 있다. 삼성전자로부터 받은 금액을 변제하고 이직시키면 법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다. 최악의 경우 소송전으로 이어지는데 막대한 자금이 소요될 뿐 아니라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해당 업체로서는 이래저래 부담이 크다.

아직 중소·중견 기업 중에는 퇴직·이직자 관리 제도를 운용하는 기업이 드물다. 이 때문에 이직·전직을 통해 중국 등 해외로 핵심 기술이 유출되는 사례가 굉장히 많다.

삼성전자 임원 출신인 한 관계자는 “근속 기간이 점차 짧아지고 있어 경쟁사나 해외 업체에서 이직을 제안하면 흔들릴 수밖에 없다”며 “R&D 부서에서 근무한 경우 이직에 제한이 있지만 이때도 얼마든지 경력을 `세탁`할 수 있어 실효성 있는 대책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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