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제조업 로드를 가다]아세안-⑤인도네시아/거인이 일어난다, 인도네시아 제조업 강국 부상의 꿈

지난 2004년 인도네시아 초대 민선 대통령에 당선된 유도요노는 취임 후 부정부패 척결과 테러와의 전쟁 등 정국 안정에 매진하고 있다. 그의 경제 정책은 자유 시장경제 체제 구축과 만성적인 재정 적자 해소에 초점을 맞췄다. 정치·사회 안정을 기반으로 임기 동안 5~6% 수준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했다. 금융 위기 때도 4.5% 경제 성장률을 달성하는 성과를 일궜다. 덕분에 민선 2기 대통령으로 재선됐다.

제2기 유도요노 정부는 외국인 투자를 활용한 제조업 육성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다. 올해는 각각 경제 성장률 7%와 인플레이션 4%, 320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게 목표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제조업을 육성하고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해 오는 2025년까지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한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통신·기계 등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선정하고, 6대 권역별로 470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중국 내 제조업 여건이 나빠지면서 최근 인도네시아에 외국인 투자가 몰려들고 있다. 무역 규모가 크게 늘고 있고, 2억4000만의 인구가 지탱하는 내수 시장의 영향력도 컸다. 인도네시아 정부의 거시경제 운영 능력도 외국인 투자를 끌어들이는데 한 몫 했다.

지난 2009년 108억달러에 불과했던 외국인직접투자(FDI)는 2012년 246억달러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지난해 FDI는 300억달러에 육박한 것으로 추산된다.

인도네시아 최저 임금은 주변 경쟁국인 베트남·필리핀보다 낮은 수준이다. 일찍이 우리 기업들은 저임금 노동력을 활용하기 위해 전자제품 조립 등 제조업 분야에 진출했다. 인도네시아 인구는 2억4000만명으로 이 중 15~64세 생산 가능 인구는 68.1%를 차지한다. 우리나라 생산 가능 인구 비중이 46.4%인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경제 활력을 갖춘 셈이다.

인도네시아 제조업의 중심지는 자바 섬이다. 지난해 FDI의 절반 이상이 자바에 쏠렸다. 자카르타를 둘러싼 자바섬 서부에서 동부를 중심으로 국가 전체 공단의 75%가 위치하고 있다. 서부 자바는 인도네시아 내 국내총생산(GDP)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인도네시아 GDP의 25%, 외국 및 국내 총투자의 30%를 각각 담당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지방 정부 관계자는 “중앙 정부가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 다양한 인센티브를 내걸고 있지만, 자바섬 투자 집중 현상은 쉽게 완화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제조업은 양적으로 성장했을 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외국 기업들이 대부분 주도했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자국 기업들도 적극 진출하고 있다. 특히 자동차 산업은 1980년대 인도네시아 정부가 규제를 완화하면서 급속도로 성장했다. 예전 인도네시아 정부는 자동차 기술 확보를 위해 한국과 국민차 사업 합작을 진행하기도 했다. 당시 정치 상황 탓에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정부는 다시 자동차 산업 발전을 위해 부품 산업을 적극 육성하고 있다. 부품 생산을 위한 원자재 수입에는 관세를 면제하는 혜택을 내걸고 있다. 해외 기업들의 자동차 부품 현지법인 설립도 적극 장려하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인도네시아에서 일부 모델을 반조립제품(CKD) 방식으로 조립 판매하고 있다. 현지 코린도그룹은 현대차와 손잡고 상용차 제조 법인을 설립해 지난 2007년부터 가동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인도네시아의 협력 관계는 더욱 긴밀해지고 있다. 지난해 5월 포괄적 경제협력동반자협정(CEPA)을 맺기 위한 실무자 회의에 착수했다. CEPA는 배타적 무역협정의 한 종류인데, 발효되면 양국간 상품·서비스 교역 및 투자가 더욱 탄력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2007년 149억달러 수준이었던 양국 교역 규모는 지난 2012년 297억달러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이미 우리나라는 인도네시아의 4대 교역 대상국이다. 인도네시아는 한국의 8번째 무역 대상국이자, 동남아 제1의 교역국이다. 양자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되면 2020년 교역 규모가 10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기업은 인도네시아 내 연구개발(R&D) 비중을 높이고, 현지에서 부품 조달 비중을 확대하는 등 현지화에 적극 힘쓰고 있다. 현지인 중 우수한 인력을 발굴해 중간 관리자로 키워 관리 효율성도 높이고 있다. 삼성·LG 등 대기업이 인도네시아에 진출하면서 부품 및 중간재를 납품하는 협력업체도 100여개가 진출한 것으로 추산된다. 초기 우리 기업은 한국 고객사에만 부품 등을 납품했지만, 최근에는 내수 시장과 해외 시장 개척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주변국과 무역자유화 정책을 추진하면서도 자국 내 제조업 육성을 위해 각종 비관세 장벽을 점점 높이고 있다. 관세율도 아직은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매년 최저 임금이 가파른 속도로 상승하면서 인도네시아 제조업 경쟁력 약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 기업이 많이 진출한 자카르타 지역은 지난 2012년 최저 임금이 18.5% 올랐고, 지난해에는 무려 44%나 급등했다. 최저 임금이 뛰어오른 것은 올해 대선을 앞둔 유도요노 정부가 내린 정치적 결단이란 분석도 나온다.

점차 까다로워지는 노동 규제와 강성 노조의 확산은 인도네시아가 제조업을 육성하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최근 인도네시아 정부는 노동자를 쉽게 내보내지 못하도록 해고 비용과 해고 보상금을 대폭 올렸다. 시간 외 근무수당 규정도 빡빡하게 운영하면서 노동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역효과를 낳았다. 많은 외자기업이 사측에 불리하게 제정된 인도네시아 노동법 탓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최근 외자기업에 대한 세무조사 등을 강화해 과세를 늘리는데 활용한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세금·조세·관세 등의 비효율적 체계, 까다로운 입찰규정 및 수출입 규정, 부동산 취득의 어려움 등도 문제로 지적된다. 세금을 선납한 후 나중에 정산받는 환급 관련 부조리도 심각하다. 심지어 한-아세안 FTA에 근거한 관세율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 사례도 있다.

도로·항만·공항 등 사회 인프라 투자도 부족해 제조업이 발전하는데 장벽이 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지난 한해 전기료를 무려 15%나 인상했다. 에너지 보조금 축소와 연료 가격 상승으로 통행료·물류비도 크게 오르는 추세다.

제조업 환경이 악화되면서 지난 2012년 이후 인도네시아 제조업 성장률은 GDP 성장률을 밑돌고 있다. 최근 인도네시아 정부의 제도 개혁 의지가 약해진 것으로 보인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제도 개혁 경직성을 이유로 인도네시아 신용 등급을 한 단계 낮추기도 했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인도네시아의 경제 상황 호조에도 불구하고 사업 여건이 여전히 낙후된 것으로 평가했다. 세계은행은 사업 여건 평가에서 인도네시아를 세계 185개국 중 128위에 올렸다. 부패지수 평가에서도 176개국 중 118위를 기록했다.

현지 업계 관계자는 “아직은 인도네시아에 대한 낙관적 전망이 열악한 사업 여건을 압도하는 편”이라며 “다만 투명성이 결여된 인도네시아 정부 정책 탓에 외자기업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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