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응사`와 `안녕?! 오케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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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히 국가적 신드롬이다.

국제 뮤직어워드 생중계 때문에 하루 결방된 날, 시청자들은 인터넷과 SNS에 불같은 불만을 쏟아냈다. 바로 요즘 대세 드라마 tvN `응답하라 1994` 얘기다. 줄임말 `응사`처럼 시청자들의 정서와 바람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시청률로 저울질되는 방송계 속성에서도 `응사`는 이미 지상파 그 어떤 프로그램도 이루지 못한 성공을 거뒀다. SNS와 동영상사이트, 모바일 유료채널 등의 파급력까지 더하면 예전 `모래시계` 못잖다. 갖가지 폐인들이 양산되고, 억센 사투리까지 “귀엽다” “끌린다”는 평가로 대접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이와는 전혀 다른 장르의 다큐멘터리 하나가 일을 냈다. 그것도 글로벌무대에서 제대로 평가받았다. 방송계의 아카데미라 불리는 국제에미상 예술부문에서 한국에 첫 수상영예를 안긴 `안녕?! 오케스트라`다. MBC가 상을 탔지만, 이 다큐멘터리는 MBC가 기획하고 방송을 했을 뿐 제작은 센미디어라는 조그만 제작사가 맡았다.

움츠러든 스물네명의 다문화가정 어린이들이 세상을 향해 문을 여는 과정을 잔잔히 그린 이 다큐멘터리는 극장용으로도 개봉됐다.

두 방송 프로그램은 각기 20년 전과 현재의 시대상을 잘 반영한 `수작`으로 평가됐고, 이미 시청자와 엄정한 심사가 그것을 인정했다.

그런데, 두 프로그램 사이엔 극명하게 갈리는 부분이 있다. `응사`는 tvN 자체 제작작이고, `안녕?! 오케스트라`는 외주 제작작이다. 물론 프로그램의 완성도와 작품성, 흥행성을 제작 주체만 놓고 가를 수는 없다. 수백억원이 들어간 자체 제작작도 소리없이 묻히는가 하면, 단돈 수천만원짜리 외주제작 드라마가 폭발적인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

결국은 방송 콘텐츠를 위해 `투자나 책임`을 누가 얼마나 지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방송콘텐츠 제작시장의 생태계 활성화와 관련 종사자의 일과 노력에 대한 보상이 얼마나 이뤄지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응사`는 CJ가 방송계 여러 뛰어난 인재를 끌어모으고, 자체로 기획해 생산해낸 콘텐츠다. 반면 `안녕?! 오케스트라`는 작품성은 더 거론할게 없을 정도로 수준높은 작품이지만, 영세한 제작사가 매편 세계적 비올리스트 용재 오닐의 출연료를 걱정하면서 어렵사리 만들어 MBC에 납품한 콘텐츠다.

말 그대로 `응사`는 망했다면 CJ가 책임지고 돈을 메워 넣었을 드라마고, `안녕?! 오케스트라`는 제작사가 책임을 지고, 빚으로 갚아야했을 다큐멘터리다.

두 작품의 다른 탄생과 똑같은 성공을 갈라놓을 생각은 없다. 다만, 이제 코 앞으로 다가온 2015년 방송시장 개방을 앞두고 우리가 만들어내는 방송콘텐츠의 생산구조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과 개선책을 논해야 될 때가 됐다. 이미 늦었을 수도 있다.

앞으로 방송사는 필요 없는 시대가 반드시 올 것이다. 유튜브가 세계 어느 방송사도 갖지 못한 강력한 방송플랫폼을 갖고 있음이 이를 증명한다.

이제는 프로그램 자체가 브랜드화하고, 상품화된다. 그렇다면 결론은 분명해진다. 프로그램을 잘 만들기 위해, 프로그램 제작 생태계가 얼마나 건강하고 풍부하게 갖춰졌느냐가 그 나라 방송콘텐츠 경쟁력으로 직결된다.

세계적 제작 능력을 갖추고도, 세계최악의 제작 생태계를 가진 것이 우리다.


이진호기자 jho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