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국정 철학과 예산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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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예산이 문제다. 기획재정부가 확정한 내년 예산안을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기본 예산안이 국회로 넘어가 부처별 예산 조율은 끝났지만 여전히 시끄럽다. 매년 되풀이되는 연례행사라고 넘길 수 있겠지만 올해는 쉽게 사그라질 분위기가 아니다. 특정 항목 예산을 맞추기 위해 앞뒤 가리지 않고 각 부처 예산을 일괄 삭감했다는 이야기가 파다하다.

박근혜정부에 2014년 예산 편성은 남다르다. 국정 방향과 지표를 보여주는 사실상 첫해기 때문이다. 올해 초 새 정부가 출범했지만 예산은 지난 정부에서 짰다. 이 때문에 국정 목표와 이를 위한 실행이 다소 미흡하더라도 면죄부가 되었다. 하지만 내년은 다르다. 새 정부 주도로 모든 게 갖춰져 더 이상 핑계거리가 없다.

박근혜정부 하면 꼬리표처럼 붙어 다니는 게 `창조경제`다. 임기 내에 약속한 굵직한 국정 목표 가운데 빠질 수 없는 게 창조경제 실현이다. 이를 주도적으로 실천하기 위해 미래창조과학부라는 전담 부처까지 만들었다. 미래부가 출범한 지 얼추 8개월. 솔직히 안팎의 평가는 비판적이다. 창조경제는 정권 출범 때와 마찬가지로 모호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많은 사업을 쏟아냈지만 딱히 떠오르는 간판 정책도 없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가 바로 부족한 예산이었다. 실탄이 없는 현실에서 제 아무리 번듯한 정책도 공허한 메아리였다.

미래부 안팎에서 예산 편성에 기대를 걸었던 배경이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하다. 기재부가 확정한 내년 미래부 예산은 13조5746억원이다. 이 가운데 연구개발(R&D) 투자 규모가 6조153억원으로 절반을 차지한다. 결국 사업예산으로 쓸 수 있는 건 7조원 내외다. 딱히 항목은 없지만 신규 사업을 포함해 창조경제로 분류하는 예산은 1059억원이다.

2014년 국가 전체 총지출 규모는 357조원 수준이다. 결국 전체 예산 가운데 새 정부 대표 부처인 미래부 예산은 4% 수준이고 창조경제 예산은 채 0.1%를 넘지 않는다는 계산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벌써 여기저기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내년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정보통신 분야 대표 국제 행사인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전권회의 예산은 절반이 뚝 잘려 나갔다. 각종 정보화 관련 사업은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 국민들에게 `양치기 소년`이 될 판국이다. 소프트웨어를 포함해 창조경제와 밀접한 산업 활성화 정책은 `생색내기`에 그칠 공산이 커졌다. 창조경제 비타민 관련 사업, 신산업 창조 프로젝트 등 과학기술과 IT융합을 위한 신규 사업은 당장 예산 확보가 발등의 불로 떨어졌다.

예산은 나랏돈이지만 출처는 세금이다. 국민이 거둬 준 돈이다. 절대 허투로 쓸 수 없다. 예산 항목 하나하나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여기에 새 정부 색깔을 보여 주는 게 예산이다. 박근혜정부가 어느 곳에 방점을 찍었는지 예산 항목을 뒤집어 보면 훤히 보인다. 예산 뒤에 정책이 있기 때문이다. 정책 실현을 위한 마중물이 바로 예산이다. 그래서 예산을 쓰는 데도 철학이 필요하다.

이르면 이번 주부터 정부 예산안을 토대로 국회 예산결산특위가 시작된다. 진짜 국민을 위해, 대한민국을 위해 어느 곳에 세금을 써야 하는지 최종 판가름이 난다. 무엇보다 예산에 과연 새 정부 철학이 얼마나 녹아있는지 숙고해 봐야 한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