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개학을 코앞에 두고 밀린 일기를 한꺼번에 쓰거나 중간고사 전날 밤 벼락치기를 하느라 애 먹은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있다. 사회에 나와서도 새 기획안 발표가 내일인데 연습은커녕 자료 준비도 안 돼 도망치고 싶었던 서늘한 기억도 있을 것이다.
미루는 습관은 인생 곳곳에서 우리 발목을 잡는다. 데드라인이 정해지면 그 순간이 닥치기까지 자신과 시간 사이의 끈질긴 눈치 게임이 시작된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애초부터 게임 선수는 자신뿐이라는 사실이다. 시간은 착실하게 흘러가고 데드라인까지 임무를 마쳐야 하는 건 오로지 자신의 몫이다.
미루는 대상은 두말할 필요 없이 하기 싫고 귀찮은 일들이다. 어렵고 부담스럽고 불편한 일에 대면하면 도망치거나 외면하고 싶다. 결국 별로 시급하지 않은 일을 만지작거리면서 `그래도 난 나름대로 노력했어` `하기 싫은 건 어쩔 수 없잖아`라는 핑계를 대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미국 심리학 전문지 `사이콜로지 투데이`에 따르면 다섯 명 중 한 명은 스스로를 만성적 미루기 환자로 여긴다. 미루는 습관은 일상 속에 교묘하게 숨어 정체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맘만 먹으면 단번에 무찌를 수 있을 것 같지만 가장 떨쳐내기 힘든 악습관이기도 하다.
`심리학, 미루는 습관을 바꾸다` 저자인 윌리엄 너스는 임상심리학자다. 불안, 우울, 미루는 습관 등 심리적 압박에서 비롯되는 문제를 연구하고 이로 인해 고통 받는 환자를 상대해왔다. 그는 우리가 어떤 행위를 미루는 것은 무의식적인 회피 본능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기 싫고 귀찮은 일을 피하는 것은 그 행위에 대한 불안감, 불편함으로부터 회피하려는 본능적 반응이라는 얘기다. 저자는 이런 심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지나칠 것이 아니라 속속들이 탐색하고 분석해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야 이성을 누르고 솟아오르는 미루기 충동을 잠재울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심리학, 미루는 습관을 바꾸다`는 사회 심리학자 앨버트 엘리스의 인지정서행동치료법을 응용한 인지적, 정서적, 행동적 접근법으로 미루는 습관을 살펴본다. 미루기와 개인의 관계를 이 세 가지 측면에서 분석해 문제 상황을 극복할 방법을 체계적으로 제시한다.
제1부 `습관을 이기는 심리 훈련`에서는 미루는 습관을 논하기에 앞서, 미루기의 그늘에 숨어 있는 심리를 살펴본다. 미루기는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사고방식과 이로 인한 불안감으로 회피 충동이 일어나면서 발생한다. 저자는 실패를 두려워하게 만드는 흑백 사고의 덫에서 벗어나 `당장 해치우기` 전략을 활용하라고 조언한다.
제2부 `미루는 습관은 단순하지 않다: 인지적 접근`에서는 미루는 습관에 빠지게 만드는 인지적 장벽을 뛰어넘는 방법을 설명한다. 감정적으로 자신을 컨트롤하고 미루는 습관을 예방하는 방법은 제3부 `감정 근육을 키우는 연습: 정서적 접근`에서 다룬다. 제4부 `내 삶을 긍정적으로 바꾼다: 행동적 접근`에서는 중요한 일을 피하고 덜 시급한 일에 매달리는 행동적 회피를 벗어날 수 있는 방안을 소개한다.
윌리엄 너스 지음. 이상원 옮김. 갈매나무 펴냄. 1만3000원.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