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KT에서 교환기와 무선통신기지국 설비를 20여년간 유지·보수해온 40대 후반의 A씨는 베테랑급 기술자다. KT를 나와 정보통신공사업체 근무를 희망했지만 인정기술자 제도상 `초급 기술자`로 분류돼 취업이 어렵다. 중급 이상 기술자만 현장배치가 가능해 업체에서 채용을 꺼리는 탓이다.
#B씨는 일반계 고등학교를 나와 아파트 구내 정보통신 시공현장에서 만 15년을 근무하며 풍부한 현장경험을 쌓았다. 하지만 B씨의 급여는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한 기사자격증 보유 직원보다 적다. 서류상으로 초급 기술자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정보통신기술(ICT) 기술자 및 감리원 인정제도를 놓고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15년 이상 경력자도 현 제도상에서 초급 기술자로 분류돼 구직이 어렵고, 중소업체는 국가가 인정하는 고급 기술자를 확보하지 못해 구인난을 겪고 있다.
30일 전자신문과 한국정보통신공사협회 조사에 따르면 2013년 6월 기준으로 등급제한에 걸린 전국 정보통신 인정기술자와 감리원은 1만40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5년 이상 경력에도 불구하고 초급 인정밖에 받지 못하는 인원은 전체 51.3%에 달했다.
인정기술자와 감리원 제도는 기술사, 기능사 등 관련 분야 국가기술자격증이 없어도 설비에 관한 기술 또는 기능을 가진 자가 학력(전공)·경력을 인정받아 경력수첩을 발급받고 현장에서 시공책임과 감리를 맡는 것이다. 국가기술자격자의 건설현장 근무기피와 저임금에 따른 시공인력 부족문제를 해결하고 현장 경험이 풍부한 인력을 적극 활용하는 차원에서 1995년(정보통신 분야는 1998년) 도입됐다.
하지만 정부는 2007년 기술사들이 우대 방안 일환으로 인정기술자 폐지를 요구하자 기존 특급(학력·경력 인정자)에서 고급(경력 인정자)까지 인정하던 폭을 초급으로 일괄 축소했다.
이 여파로 인력 부족 등 제도변경에 따른 폐해가 속출하고 있다. 현행법은 정보통신공사업 등록과 5억원 이상 공사에서 중급 이상 기술자를 의무배치 하도록 했지만 서류상의 중급 이상 기술자가 턱없이 모자라 구인난을 겪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을 낳고 있다.
전국 7700여개 정보통신공사업체에서 활동하는 중급 이상 기술자는 2만4000여명(일반기업체 제외)으로, 전체 기술자 4만6000명의 50%를 약간 웃돈다. 나머지 절반 중 국가기술자격자를 제외한 1만2000명은 초급기술자로 일괄 분류돼 10년 이상의 경력을 쌓고도 자격제한 규정에 걸려 공사현장에 입회하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실제로 정보통신공사 업계 연간 행정처분 중 기술자 미비로 인한 항목은 2010년 30.2% 2011년 25.8% 2012년 29.4%로 3년 평균 전체 28.2%를 차지했다.
이 같은 문제가 지속되자 자격증 불법대여 등 불법 행위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정보통신기술 관련 자격증은 시장에서 수백만원대에 거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사 업계가 아닌 일반 회사에 취직한 고급 기술자들이 자격증이 필요한 업체에 명의만 빌려주는 식이다. 제대로 된 설비구축과 감리가 이뤄질 리 없다.
이 때문에 중소 업계는 현행 초급으로 제한된 인정기술자·감리원 제도가 중급으로 상향 조정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술사 등 고급인력이 취직하는 시장과 현장 기술자·감리원이 활동하는 영역이 다르기 때문에 인정제도를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등급 상향 조정이 어렵다면 현행 인정제도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평가제도를 도입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올해 변경이 예정된 건설기술자 등급평가 방법처럼 기술자 경력(40점)·자격(40점)·학력(20점), 교육가점(3점) 등을 종합평가한 역량지수(ICEC)를 활용해 기술자 등급을 산정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공대진 정보통신공사협회 전략정책국장은 “시공현장은 근무여건상 3D업종으로 인식돼 인력 확보에 어려움이 크다”며 “오랜 경험을 보유한 경력기술자가 최하 등급에서 못 벗어나 국가적인 기술인력 낭비와 시공 품질이 저하가 우려되는 만큼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초급 인정기술자 시공업무 근무경력 현황(21013년 6월 말 기준)
자료:정보통신공사협회, 전자신문
김시소기자 sis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