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다른 사업 확장의 길을 걷는 中 화웨이

[창간 31주년 특집]창조, 사람에게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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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가는 방향과 반대로 가면 불안하기 마련이다. 배울 상대도 없고 외로워진다.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면 그만큼 위험이 따른다. 대신 성공하면 더 큰 성과를 낸다. 세계 통신 장비 시장의 선두에 오른 화웨이가 그 대표적 사례다. 발상의 전환으로 승승장구했다.

화웨이의 특이함은 사업 확장에서 잘 드러난다. 기술 기업은 보통 선진국 시장에서 신흥시장으로, 도시에서 지방으로 세력을 넓힌다. 화웨이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농촌에서 뿌리를 내린 후 도시를 공략했다. 중국을 평정한 뒤에는 아프리카 등 신흥시장에서 먼저 성과를 내고 북미와 유럽으로 진출했다.

니혼게이자이는 최근 화웨이의 신흥시장 공략 현장을 보도했다. 화웨이 직원은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55도 폭염과 영하 40도 혹한에서도 안정성을 유지한다”며 자사 데이터센터의 냉각 및 단열 성능을 앞세워 영업한다. 이동이 가능한 컨테이너 형태다. 사막 건설 현장에서도 방대한 데이터 처리가 가능하다. 전력 공급이 열악한 개발도상국도 화웨이의 무대다.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 시스템을 묶어 휴대폰 기지국 솔루션으로 만들었다. 케냐와 파키스탄에서 날개 돋친 듯 팔렸다.

화웨이의 적극성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언제 어디서나 네트워크를 책임진다”는 런정페이 회장의 경영철학이 녹아 있다. 2011년 3월 일본 도호쿠 지방에서 대지진이 일어나자 어지간한 외국계 기업은 임직원을 철수시켰다. 그때 화웨이는 오히려 지진 현장에 임원과 엔지니어를 보내 통신 네트워크 복구를 도왔다.

런 회장이 화웨이를 창업한 1987년, 전화교환기 등 중국의 네트워크 장비는 도시에 집중돼 있었다. 시장은 독일 지멘스와 일본 NEC가 주도했다. 런 회장은 농촌으로 눈을 돌렸다. 저가 제품으로 농촌을 파고들면서 기술과 자본을 쌓았다. 도시에 진출하기 위해 무료로 써보라는 극단적 마케팅도 감수했다.

10년 만에 중국 내수를 평정한 화웨이는 1997년 해외 사업을 시작했다. 시스코 등 시장을 주도하는 거인들과 비교적 경쟁이 덜 치열한 러시아와 브라질에서 출발했다. 이듬해는 나이지리아와 이집트를 거점으로 아프리카 대륙에 진출했다.

신흥시장에서 승승장구한 비결은 앞서 말한 화웨이 직원의 열정이다. 회사에서 잘 때 필요한 매트는 필수품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임직원 10만명을 돌파한 2010년에는 매일 1400명의 직원이 비행기 안에 있을 정도로 세계 각국을 누볐다. 8일 동안 정글을 걸어서 목적지에 가거나 해적에게 습격당해 30바늘을 꿰매고도 다시 영업 일선으로 복귀한 직원 스토리는 전설적이다.

2012년 기준 중동과 아프리카 이동통신 장비 시장에서 화웨이 점유율은 25.9%에 이른다. 아직 42.8%의 에릭슨보다는 낮지만 13.4%에 그친 노키아지멘스를 제쳤다. 2005년부터는 보다폰과 브리티시텔레콤, 텔레포니카 등 굴지의 통신기업이 화웨이 장비를 사기 시작했다.

화웨이 장비의 경쟁력은 단지 싼 가격만이 아니다. 기술력도 선진국 경쟁사에 뒤지지 않는다. 니혼게이자이는 현재 LTE 네트워크를 구축 중인 세계 194개 지역 중 94곳에서 화웨이가 참가한다고 전했다. 발상의 전환과 임직원의 열정으로 화웨이는 더 이상 중국 저가 업체가 아닌 세계 통신 시장을 든든히 지탱하는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했다.


장동준기자 dj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