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제조업 지배하는 대기업형 PEF, 한국도 등장

대기업형 사모펀드 한국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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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팩스는 포장용·전자소재용 테이프 전문 업체다. LCD 디스플레이 모듈을 조립할 때 쓰는 고정용 테이프나 터치스크린패널(TSP) 소재 층간 부착용 필름, 일반 포장용·소비재용 테이프와 유니랩 등이 주 매출원이다. 지난 1977년 설립됐고 지난해 매출액은 1020억원, 영업이익은 133억원을 벌었다. 2차전지, TSP 분야 수요가 늘면서 앞으로 고성장이 기대되는 회사다.

최근 이 회사 사장이 바뀌었다. SKC를 거쳐 신화인터텍 대표로 재직했던 최승규씨다. 삼성전자에 LCD TV용 광학필름을 공급하던 신화인터텍을 일군 주역이다. 연구개발(R&D)과 생산의 달인으로 평가받는다. 지난 2009년 신화인터텍 대표에서 사퇴했던 최 사장이 테이팩스에 자리를 잡은 건 스카이레이크인큐베스트(이하 스카이레이크)와 미국 칼라일그룹 컨소시엄이 지난달 테이팩스를 인수하면서다. 지분 45.2%를 가진 스카이레이크 최고경영자(CEO)인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이 그를 지목했다. 최 사장은 지난 2009년 `진대제 AMP`에서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제조업이나 기술 기업은 업종의 특성을 이해하는 전문성을 갖춘 심사역이 드물어 국내에서는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펀드가 적었다. 투자를 해도 경영권 인수(Buy-Out)보다는 경영은 그대로 맡기고 출구(Exit)를 찾는데 주력했다. 최대 주주가 은행이나 펀드인 경우 최고재무책임자(CFO)나 사외이사·감사 등을 파견하는 데 그치는 이유다. 국내에 기술·정보기술(IT) 제조업 중심으로 투자를 단행하고 실질적으로 경영권을 장악해 운영하는 첫 펀드가 나왔다.

◇경영권 행사하는 PEF

스카이레이크는 지난 2006년 진대제 대표가 자본금의 절반인 15억원을 투자해(현재 지분 100%, 자본금 40억원) 설립한 사모펀드 투자 전문 회사다. 올해 설립 8년째로 업력이 짧지만 상반기 PEF 자금모집 시장을 싹쓸이 했다. 우정사업본부, 국민연금 등에서 출자한 금액만 총 2650억원에 이른다. IT 산업 위주로 투자하고 기업연합(CO-OP)을 통해 육성한다는 전략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무엇보다 광범위한 제조업계 인맥을 통해 경영권을 행사해 수익을 극대화 한다는 게 특징이다. 지난해에는 가전용 모터와 댐퍼(온도제어장치) 전문 업체 에스씨디를 일본전산산쿄에 매각하면서 차익을 냈다. 지난 2006년 이후 경영진 배임·횡령 등으로 고꾸라진 회사가 7년만에 탈바꿈했다. 에스씨디는 지난 분기 예상 매출액을 70%나 뛰어넘으며 `어닝 서프라이즈` 실적을 냈다. 스카이레이크는 지난 2010년 지분을 42.98%로 늘린 뒤 하이닉스 상무, 한성엘컴텍 대표 등을 거친 이대훈씨를 대표로, 삼성전자 상무 출신 박용진씨를 사장으로 선임했다. 세크론·세메스 등 삼성전자 자회사 장비업체 재무담당을 역임한 김인겸씨가 CFO로 파견됐다. 홍순직 전 삼성SDI 부사장을 사외이사로, 감사는 손연기씨로 교체했다. 이전까지 등기임원은 대부분 증권사와 신탁투자사 출신들로 이뤄져 있었다.

광디스크드라이브(ODD) 핵심 부품 광픽업모듈 업체 옵티스는 지난해 삼성전자 필리핀 ODD 생산 법인 세필(SEPHIL)을 인수하며 덩치를 키웠다. 스마트폰용 카메라 자동초점(AF) 액츄에이터를 비롯해 광학 관련 사업체 추가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배경에는 스카이레이크의 전략이 있다는 후문이다.

반도체 전문가인 진 대표가 이끌면서 투자 기피 업종인 반도체 팹리스 업체에도 다수 투자했다. 픽셀플러스는 지난해 투자 이후 매출액이 900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올해 투자한 한미반도체는 반도체 소잉앤플레이스먼트(S&P) 장비 세계 1위다.

◇최고경영자 과정으로 구축한 인맥의 힘

에스씨디 경영을 맡았던 이대훈, 손연기씨 등은 진대제AMP 수료생이고 박용진, 홍순직, 김인겸씨는 삼성 출신이다. 최근 매각을 추진하고 있는 윌테크놀러지는 스카이레이크 제2호 PEF가 39.6%, 진 대표 본인이 21%를 투자한 반도체 검사장비 업체다. 김용균 사장 외 전무·상무급 임원 중 3명이 진대제AMP 과정을 거쳤다.

심플렉스인터넷, 코다코 등 스카이레이크가 투자한 업체 다수 대표와 임원들 역시 진대제AMP 출신이다.

진 대표는 스카이레이크를 설립하면서 ICU가 개설한 `정보기술 최고경영자과정(IT AMP)`을 이끌었다. 이후 `진대제 AMP`로 확대 개편된 이 과정 수료자를 중심으로 `글로벌IT 리더스포럼`을 조직하고 꾸준히 모임을 주선하고 있다. 올해 9기까지 수료자는 산업계와 관계, 금융계 종사자 440여명이다.

◇직접 제조업체 설립도 추진, 대기업형 구조로 전환

스카이레이크는 블루앤그린테크놀러지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진 대표 본인의 투자 지분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직접 제조업체를 설립해 투자사들과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진 대표는 “외투 제조업체의 한국 유통을 돕는 회사일 뿐”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공장 제어시스템·자동화 전문 업체 에스아이티에 투자하면서 공정 기술력도 확보했다. 92% 지분을 투자한 뒤 스카이레이크 이강석 부사장이 이 회사 대표로 취임했고, 에스씨디 CFO였던 김인겸씨가 에스아이티 전무로 자리를 옮겼다.

지분을 투자해 반도체·디스플레이·2차전지·소재·소프트웨어 등 주력 산업 공급망(SCM) 내 핵심 업체들의 경영권을 확보하고, 정보력과 인맥 네트워크를 활용해 신 시장에는 직접 제조업체를 만드는 형태다. 삼성이나 LG그룹처럼 투자 회사 간 수직계열화도 가능하다. 경영권을 확보하면 핵심 기술 학습 효과도 있다.

금융 업계 관계자는 “스카이레이크도 명목은 펀드 운용이지만 실제로는 대기업 총수처럼 여러개 회사를 거느리면서 막강한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진 대표는 “시너지를 통한 투자 성과를 높일 수 있는 구조로, 국내에서 처음 시도한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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