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만든 캐릭터 하나 열 공장 안 부럽다`는 이야기는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다. 특히 미국·일본 등 콘텐츠 강국에 비해 캐릭터산업이 취약한 우리로서는 깊이 새겨들어야 한다. 캐릭터산업을 이끄는 대표적인 예를 꼽아보자. 환갑을 넘긴 스누피를 비롯해서 디즈니의 상징 미키마우스와 강력한 라이벌 벅스 바니, 게임 주인공인 마리오형제, 코믹스 히어로 배트맨과 슈퍼맨, 동화 속의 백설공주와 어디서 왔는지 모를 헬로키티 등을 쉽게 망라할 수 있다.

캐릭터 하나하나의 부가가치는 실로 엄청나다. 팬시, 출판, 영화, 게임, 테마파크 등 확장 영역의 제한이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애니메이션 수준이 결코 낮지 않은데도 세계적인 캐릭터가 등장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캐릭터=만화`라는 등식을 세워놓고 출발하려는 우리의 자세에 있는지도 모른다.
만화 밖에도 캐릭터는 많다. 캐릭터가 탄생하는 배경은 매우 다양하다. 배관공 마리오형제의 고향은 어드벤처게임이다. 가정용 게임기에 힘입어 미키마우스의 인지도를 두 배 이상 앞지르기도 했다. 이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게임 캐릭터가 된 마리오는 공주를 구출하는 임무를 넘어 레이싱을 하고, 격투를 벌이고, 올림픽에 나서는가 하면 롤플레잉게임의 주연으로도 등장했다.
백설공주의 고향은 정확하지 않다. 북유럽에 구전되던 설화의 주인공 정도로만 알려졌었다. 하지만 월트디즈니를 만나 세계 최초의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주인공으로 화려하게 다시 태어났다. 이제 세계인들은 백설공주의 얼굴로 으레 만화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곤 한다.
일본에서 가장 비싼 캐릭터로 꼽히는 고양이 `헬로키티`는 고향이 없다. 하지만 원작이 없는 순수 창작 캐릭터가 이만큼 성공한 전례가 없다. 2000년대 초반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는 스누피의 대항마로 세우기 위해 우리 돈 6조원을 제시하며 헬로키티의 디지털 판권 전체를 사려 했다. 개발사 산리오는 이를 거절했다.
이처럼 캐릭터가 탄생하는 공간은 많다. 우리나라는 세계 게임 시장에서 강세를 보이며 백설공주를 능가하는 흥미진진한 동화와 설화가 즐비하다. 원전에 기대지 않은 순수 창작 캐릭터를 창조할 수 있는 능력 또한 충분하지 않을까.
먼저 어떤 것을 `캐릭터화`할지 끊임없는 연구가 필요하다. 대한민국의 대표 캐릭터로 꼽을 만한 것이 둘리와 뽀로로인데 모두 만화·애니메이션이 고향이다. 아직까지 우리에게는 캐릭터산업에 고착된 이미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뽀로로 이후 누가 캐릭터 시장을 이끌까.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11 캐릭터산업백서`에 따르면 국내 캐릭터 시장은 2010년 현재 5조8968억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부가가치액은 2조4755억원에 달했다. 모두 전년 대비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했다. 수출액이 크게 증가한 반면에 수입액은 감소세로 돌아선 점이 주목할 만하다.
세계 캐릭터 시장이 정체기에 들어섰다. 포화상태에 접어든 콘텐츠 강국 시장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시장이 탄력적으로 성장할 여건이 갖춰진 셈이다. 따라서 우선은 캐릭터를 만화 등의 원작 안에서만 찾으려는 시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스마트기기 보급과 모바일 중심의 환경 변화는 우리나라에 더 유리하다. 차세대 캐릭터 시장을 우리가 선도하기 위해서는 먼저 형식의 틀을 넘어 세계적으로 통하는 우수한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 그 속에서 살아 숨쉬며 존재 자체가 이야기가 되는 생생한 캐릭터를 창조해야 한다.
뽀로로에 열광하던 꼬마들이 무럭무럭 자라 어느덧 청소년이 되고 있다. 뽀로로와 함께 키운 상상력과 감성이 이들의 최고 무기다. 장차 우리나라에서 디즈니랜드를 위협할 꿈의 공장이 탄생한다면 `뽀로로키드`들이 그 주인공이지 않을까.
모든 재료 준비는 마쳤다. 이제 어떤 것을 만드는지가 관건이다. 누구나 만드는 흔한 음식을 만들어봐야 경쟁에서 승산이 없다. 새롭고 맛있어야 한다. 고뇌하는 셰프의 심정으로 재료들을 한참 노려보자. 그러면 답이 보일 것이다.
이호열 문화마케팅연구소 공장장 culturemkt@culturemk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