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라 고속도로가 꽉 들어찰 거란다. 지레 겁을 먹고 늦은 밤을 택해 태안 만리포 해수욕장으로 혼다 파일럿을 몰았다. 짐이 많지도 않았거니와 내부가 워낙 넓었던지라 차는 텅텅 빈 느낌이었다.

늦은 밤 조용한 파일럿 안에서 듣는 음악은 귀를 즐겁게 했다. 간간이 들리는 엔진 소리마저 부드럽게 울렸다. SUV가 가솔린을 사용하는 건 이 때문이리라. 떨림도 소음도 느끼기 어려웠다. 복합연비 8.2㎞/ℓ를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래도 가솔린만의 장점은 확실했다. 시속 180㎞까지 슬쩍 속도를 내봤다. 2톤이 넘는 차가 어쩌면 그리도 류현진의 강속구처럼 뻗어 나가던지. 257마력의 엔진은 폼으로 달린 게 아니었다.
음료와 CD와 지갑과 휴대전화. 여행자들에겐 자잘한 짐이 많았다. 그러나 파일럿은 이 모두를 넉넉히 받아주었다. 센터페이서와 대시보드에 다른 차에선 보지 못했던 수납공간이 많았다. 동승자는 `냉장고 같다`고 호평했다. 변속레버를 운전대 옆으로 올리고 원래 있던 자리에 널찍한 공간을 마련해준 것이 마음에 들었다. 가끔 운전대를 돌리다 변속레버에 손이 부딪히는 게 아쉽긴 했지만.
저런. 해수욕장에 도착했는데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숙박업소가 꽉꽉 들어찼던 것이다. 아직 여름이 오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은 바다가 그리웠던가 보다. 지도에 나온 모든 숙박업소를 돌아본 후 차에서 자기로 결정했다. 2열시트까지 접자 널찍한 잠자리가 완성됐다. 마침 캠핑용 담요가 있어 덥고 잤다. 키가 180㎝인 사람이 기지개를 켤 정도로 파일럿 침대는 널찍했다.
바닷가에 온 김에 캠핑장을 찾아 잠깐 텐트를 쳤다. 가족 단위로 온 사람들이 많아 캠핑장에는 차가 많았다. 그때서야 파일럿이 큰 차라는 것을 새삼 알았다. 얼른 보기에도 다른 차들보다 덩치가 컸다. 길이가 4.8미터, 높이가 1.8미터나 됐다. 전체적으로 각지고 절제미 있는 외모는 강한 남성적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듬직하다`는 느낌이 절로 들었다. 미국 고속도로 보험협회(IIHS) 충돌 테스트에서 최고등급을 받았단다.
비가 내리는 바람에 으슥한 밤 텐트를 갰다. 비와 모래에 한참을 시달리다 파일럿에 앉았을 때 큰 차가 주는 안락함에 위로감마저 느껴졌다. 구불구불한 시골 길을 달려 나오는데 그 큰 몸을 잽싸게 빼내는 걸 보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파일럿의 코너링은 일품이었다. 사륜구동으로 거친 들판을 달려보지 못해 아쉬웠지만 여행길에 파일럿이 보여준 다양한 `재능`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김용주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