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상돈의 인사이트]종이와 프린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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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밸런타인데이, 일본에서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초콜릿이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3차원(3D) 프린팅 기술로 원하는 사람의 얼굴 모양과 똑같이 만든 연인 얼굴 복제 3D 초콜릿이 등장한 것. 제작 방법은 간단하다. 먼저 손님이 오면 작은 방에 들어가 스캐너를 이용해 3D스캔을 받는다. 그러면 3D 프린터가 스캔한 얼굴 형상을 그대로 새긴 실리콘 틀을 만들어준다. 이 틀 속에 초콜릿을 넣어 굳히기만 하면 3D 초콜릿이 완성된다.

도쿄 하라주쿠에는 고객의 모습을 사진 대신에 작은 피규어(Figure)로 만들어 주는 가게도 생겼다. 제작 방법은 얼굴 초콜릿과 동일하다. 다양한 각도에서 신체 이미지를 스캔한 후 렌더링을 거쳐 3D 프린터로 출력하면 피규어가 탄생한다. 옷 색상은 물론 손톱이나 머리 모양 등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표현한다. 모형 크기별로 20~50만 원대로 상당히 비싸지만 연인이나 관광객들 사이에 꽤 인기다.

얼마 전 3D 프린터를 이용한 총기 제작 기술이 인터넷에 공개되면서 논란이 뜨겁다. 3D 프린팅이 처음 선보인 것은 1984년이다. 미국의 찰스 헐(Charles W. Hull)이란 사람이 광조형법(Stereolithography)으로 최초의 3D 프린터를 개발했다. 이후 혁신을 거듭해, 3D 프린팅 기술은 금형이나 틀 없이도 플라스틱 분말 등 원재료를 잉크처럼 분사해 입체적으로 물건을 찍어낼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제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설계도를 바꾸면 된다. 짧은 시간에 단점을 보완할 수도 있다.

제조업체 입장에서는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요건을 갖춘 셈이다. 이코노미스트는 3D 프린팅이 무엇이든 찍어낼 수 있기 때문에 점차 광범위하게 영향력을 확대할 것이라고 예측하며 `제3의 산업혁명`으로 표현했다. 삼성경제연구소도 `미래 산업을 바꾸어놓을 7대 파괴적 기술`을 발표하면서 3D 프린팅을 포함시켰다.

실제로 보잉은 찬 공기를 전자 장비에 공급하는 배관을 비롯한 소형 항공기 부품을 3D 프린팅을 이용해 생산한다. 유나이티드 테크놀로지스 역시 항공기 엔진에 사용되는 블레이드를 3D 프린팅으로 만든다. 애플, HP 등 글로벌 기업들이 3D 프린팅 업체 인수를 추진한다는 소문도 끊임없이 들려온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 중의 하나가 종이(紙)다. 종이가 없던 시절에는 대나무나 동물의 뼈를 기록장으로 삼았다. 편지 한 장을 보내려면 한 보따리의 짐을 챙겨야 했다. 하지만 서기 105년 채륜이 종이를 발명하면서부터 기록 작업은 환상적으로 편리해졌다. 누구든 자신의 생각을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하고 이를 후대에 남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인류가 개발한 가장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로 종이를 손꼽는 이유다.

20세기 들어 컴퓨터가 탄생하고 `정보의 바다`로 불리는 인터넷이 등장했다. 과거 종이에 기록하던 수많은 정보들이 컴퓨터 속으로 무섭게 빨려 들어갔다. 사람들은 이제 컴퓨터에 저장된 디지털 정보를 프린터로 출력해 본다. 씨줄과 날줄로 엮어 만든 종이가 문명 발전에 새로운 계기가 됐듯이, 디지털 정보로 어떤 물건이든 찍어낼 수 있는 3D 프린팅 역시 미래 산업 전체를 송두리째 바꿀 수 있다. 지난 수십 년간 경험으로 보면, 디지털의 힘은 생각보다 훨씬 강력하다.


주상돈 성장산업총괄 부국장 sdjoo@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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