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훈의 디지털 확대경]그 답은 우리 가족이 잘 알고 있다

가진 자의 횡포가 사회적 논란거리다. `라면 상무` 사건으로 회자되는 여승무원 폭행사건이 그랬고, `빵 회장`의 주차관리원 폭행사건이 그랬다. 편의점 본사의 횡포를 막자며 가맹사업법을 개정하려던 차에 이번엔 한 유업회사 영업사원의 대리점주 막말 사건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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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모두가 `갑의 횡포`로 요약된다. 갑의 횡포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최근 사회문제로 부각되며 공분(公憤)을 산 데엔 두 촉매제가 있었다. 하나는 경제민주화 분위기에 편승해 한껏 고조된 반(反) 대기업 정서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 소식을 구석구석까지 전해주는 소셜네트워크의 파괴력에 있다. 덕분에 갑의 횡포는 이젠 국어사전에도 올라 있지 않은 `갑질`이란 단어로 표현되며 세상을 들끓게 한다.

1970년대 사회상을 그려낸 영화 `바보들의 행진`이나 `병태와 영자`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인 대학생 병태와 친구들은 호프집에서 맥주를 주문하며 “야! 여기 술 가져와.”를 목청껏 외친다. 영화 속에서 종업원을 부르는 호칭은 다름 아닌 `야`다. 불려온 종업원은 태연하다. 이런 장면은 영화에서 여러 차례 나온다.

당시엔 그랬다. 지금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시대가 바뀐 탓이다. `내가 누군데`의 사고가 깔린 고압적 언행이 이제 통할 리 없다. “존경받는 리더가 되려면 먼저 하인이 되라”는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이 강조되는 이 시대에 `갑질`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대기업은 매년 막대한 비용을 들여 사회공헌, 동반성장을 외치고 또 실천하려 애쓴다. 그럼에도 갑질 사건이 터지면 기업 이미지는 단박에 곤두박질 친다. 이미지 회복에는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드니 기업 입장에선 손해도 그런 손해가 없다. 가뜩이나 거세지고 있는 경제민주화 격랑 속에서 몸을 낮춰야 하는 대기업들은 직원의 언행까지 단속해야할 처지가 됐다.

한때 대기업은 압축성장, 초고속성장의 결실을 맺게 한 주역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지금은 일감 몰아주기, 골목상권 장악, 하청업체 후리기의 주범으로 간주된다. 사상 최대 실적, 이익을 달성해도 유수 글로벌 기업은 실력으로 인정될지언정 국내 대기업은 갑질의 결과로 평가절하 되는 것 역시 현재 상황이다.

대기업들의 고민이 깊다. 경제민주화 분위기에 편승해 냉랭해진 국민감정을 누그러뜨릴 묘안 찾기에 바쁘다. 설비투자·일자리 창출·동반성장 방안을 내놓아도 그 약발은 예전 같지 않다. 식상해졌다. 그래서인지 새 아이디어를 기자에게 묻는 사례도 요사이 부쩍 늘었다. 하지만 산업적으로 접근하려니 기자의 생각도 식상하긴 마찬가지다.

10여년 전 미국의 한 국제산업협회장에게 기자가 비슷한 질문을 한 적 있다. 그는 소비심리 분야 유명한 학자다. 답은 간단했다. “저는 모릅니다.” 그리고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하지만 그 답은 내 와이프와 아이가 알고 있을 겁니다.” 시장에서 기업이나 브랜드의 이미지를 판단하는 건 철저하게 수용자의 의지에 달렸으니 답을 그들에게서 찾으라는 의미다.

기업이 이미지 회복을 위해 비용을 투자해 건전한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건 그를 평가할 가족 즉, 국민의 의중을 읽어 그들의 생각을 담아내는 일이다. 내 가족이 만족할만한 아이디어, 그것이 곧 경제민주화 파고를 헤쳐나갈 묘안인 셈이다.


최정훈 정보산업총괄 부국장 jhchoi@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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