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국제전기통신연합(ITU)에서 평가하는 국가별 ICT 평가에서 연속 3년 1등을 차지했다. 이 배경에는 요즘들어 긍정적인 측면이 부각되며 우리 경쟁력의 원천으로 평가받기도 하는 `빨리빨리 문화`도 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우리는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은 바로바로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고속으로 이동하면서도 선명한 텔레비전 시청이나 송금 등 은행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사실 이렇게 잘 갖춰진 정보통신 인프라와 이용 능력은 작은 영토와 자원빈국인 우리가 가진 중요한 국가 경쟁력의 원천이다.
우리는 1996년 CDMA 기반 디지털이동통신기술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다. 2001년도에 (ATSC 방식) 디지털 텔레비전 상용서비스를 시작한 바 있다. 이런 빠른 횡보에 힘입어 관련 장비나 휴대전화, 디지털 텔레비전 세계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빨리빨리 문화`는 IT강국으로 입지를 다지고 수출을 창출해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IT 분야에서 최고 속도로 질주하는 우리나라의 라디오방송은 아직도 아날로그 방식이다. 우리나라 대부분 방송통신 서비스는 디지털로 바뀌었다. 같은 방송 서비스인 텔레비전은 작년부터 모든 아날로그 송신이 종료되고 완전 디지털 전환이 이뤄졌다.
라디오 방송만이 아날로그 방식으로 홀로 외롭게 독야청청(獨也靑靑)하는 형국이다. 실로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모든 것이 디지털 방식으로 바뀐 지금 라디오방송은 아날로그 감성만을 고집하고 있는 것인가.
다른 방송 서비스들과 마찬가지로 라디오 방송 서비스도 방송 청취를 위한 단말기 등 주변 환경 변화에 보조를 맞춰야만 시대 상황에 맞는 서비스의 다양화와 품질 개선 등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에 내장된 디지털 방식의 라디오는 라디오방송 음악을 듣다가 맘에 들 경우 간단하게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해당 음악을 저장해 반복적으로 들을 수 있게 해준다. 물론 음질이 향상되고 입체음향을 지원하는 등 청취자의 만족도도 증대된다.
이 과정에서 음악작곡가, 가수들은 음원사용료를 이용자의 휴대폰 결제 등으로 쉽게 지급받는 등 새로운 비즈니스들이 창출될 수 있게 된다. 노래를 들으며 함께 제공되는 가사를 디스플레이에서 볼 수도 있고, 맛집 안내가 나올 때는 간단한 클릭으로 맛집 상세 정보를 볼 수도 있다.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다 방송 권역이 바뀔 때 아날로그 라디오는 새로운 방송 주파수를 찾아 다이얼을 이리저리 돌리는 수고를 해야 했다. 하지만 똑똑해진 디지털 라디오는 알아서 새로운 권역 내의 내가 듣던 라디오 방송주파수를 찾아서 끊김 없이 들을 수 있게도 해준다.
디지털 라디오 방송 서비스를 도입하면 소중한 자원인 방송주파수의 이용 효율을 증대시켜, 지금보다 더욱 다양한 라디오 방송채널을 제공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세계 라디오 수신기 시장에서 또 하나의 대한민국 돌풍을 일으킬 수 있는 비즈니스 기회를 만들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영국은 1995년, 미국은 2003년부터 디지털라디오 상용서비스를 시작했다. 어지간한 선진국은 모두 디지털 라디오방송을 실시한다.
`빨리빨리 문화`가 디지털 라디오 방송 도입에는 적용되지 않은 것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때로 남들보다 늦게 시작하는 것도 한 번쯤 경험해 보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다. 오히려 이것을 더 큰 기회로 만들어 먼저 디지털 라디오를 도입한 모든 나라들이 부러워할 명품 디지털라디오방송서비스를 탄생시킬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상운 남서울대학교 멀티미디어학과 교수, Quattro@ns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