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지식재산(IP)권 침해 벌금 규모를 증액했다. IP권 보호를 위해 행정과 법 집행을 강화하는 추세라 특허 침해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없는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업계에서는 낮은 손해 배상액을 현실화하라는 목소리가 크다.
중국 국무원은 2월 말 IP관련 조례를 개정해 IP권 침해 벌금을 증액했다고 발표했다. 개정 조례에 따르면 IP권 침해 벌금은 △IP권 침해로 얻은 불법경영액을 계산할 수 있을 경우, 불법경영액의 1~5배 벌금 부과 △불법경영액을 계산할 수 없는 경우 침해 벌금을 5만~10만위안(한화 880만~1760만원)에서 20만~25만 위안(한화 3520만~4400만원)으로 증액해 계산한다.
중국이 IP권 침해 벌금을 올린 이유는 시장 질서 확립을 위해서다. 개정된 중국 특허법에 따르면 권리 침해로 시장 질서 혼란 행위가 인정되는 경우 벌금형에 처한다.
삼성과 애플이 특허전쟁을 펼치는 미국도 이미 특허 침해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액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특허 침해에 고의성이 인정될 때 판사 재량으로 실제 손해액의 3배까지 올릴 수 있다. 악의적 IP 침해행위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못박아두는 셈이다. 루시 고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연방지방법원 판사는 지난 1일 삼성·애플 특허소송 1심 판결에서 “삼성전자가 애플 특허를 침해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며 “손해배상액은 5억9950만달러(한화 6500억원)로 산정한다”고 판시했다. 지난해 1조원이 넘었던 배심원 평결 배상액보다는 줄어들었지만 국내 판결과 비교하면 엄청난 금액이다.
지난해 8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는 삼성과 애플이 신청한 손해배상액 가운데 삼성 40%, 애플 25%만 인정했다. 두 회사는 각각 1억원을 청구했다. 김명신 지식재산포럼 회장은 “4000만원과 2500만원에 불과한 손해배상액 이전에 각사가 1억원씩 청구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우리나라에서 소송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 규모도 차이가 있지만 손해배상액이 현실적이지 못해 기업이 소송 효과를 기대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국가지식재산위원회에 따르면 2011년 우리나라 특허 소송 평균 배상액은 건당 5000만원 수준이다. 미국 건당 평균 배상액이 20억원에 이르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손해배상액이 낮아 우리나라 시장에서 특허 침해가 잦다는 지적도 있다. 한 특허청 관계자는 “낮은 손해배상액 때문에 국내 업체가 경쟁사 특허 침해 처벌을 무서워 하지 않는다”며 “손해배상액을 지불하고 특허를 침해해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이익이란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피해액 산출이 객관적이지 못한 특허법도 도마에 올랐다. 현행 특허법 128조에서는 △특허권 보유자의 손해액(침해자 판매량×특허권자 품목 단위 당 이익액) △특허 침해자 이익액 △통상 받을 수 있는 금액 등을 배상액으로 산정하는 기준을 제시했다. 피해액 추정이 어려우면 법원 재량에 맡긴다. 업계 관계자는 “특허 침해자가 판매량과 이익액을 공개하지 않아 손해배상액 산출 규정을 피하는 방법도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삼성·애플 특허소송에서도 양사는 제품 판매량을 고지하지 않았다.
피해는 고스란히 특허권자에게 돌아간다. 자사 특허가 침해 당해 소송을 건 한 중소기업 대표는 “실제 피해액으로 계산한 금액의 30%정도만 손해배상액으로 인정됐다”며 “상고하고 싶었지만 소송 비용이 더 들어 포기했다”고 밝혔다. 전종학 대한변리사회 부회장은 “기술을 발명한 특허권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연구개발(R&D)성과를 시장에서 인정하려면 최소한 미국 수준의 손해배상액이 책정돼야 한다”며 “IP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가치 인정은 미미하다”고 말했다.
불법 경영액=중국에서는 침해 상품 판매금액과 침해 재고품 실비를 더한 값으로 개산한다. 실비를 산정할 수 없을 경우에는 재고품 수량에 해당 상품 단가를 곱한 값으로 계산한다. 중국 개정 특허법에 따르면 특허권 침해로 시장 질서 혼란 행위가 있을 경우 관련 설비를 몰수·소각한다. 불법경영액 4배 이하 벌금형이나 불법경영액을 산정할 수 없을 경우 20만 위안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