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차량 반도체 국제표준 추진…국산화 탄력 받을 듯

정부가 반도체·자동차 업계와 협력해 차량용 반도체 국제 표준을 만든다. 반도체 1위, 자동차 5위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차량용 반도체를 대부분 해외에 의존한다. 정부는 국제 표준화를 기회로 차량용 반도체 국산화를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기술표준원은 6억원 자금을 투입해 오는 7~8월 자동차 반도체 표준화 포럼을 만든다. 자동차·반도체 업계 전문가들을 모아 의견을 수렴하는 자리다.

기표원은 포럼 의견을 바탕으로 자동차 반도체 국제 표준 제정을 위한 기본 계획을 수립한다. 내년에 실행 계획도 내놓는다. 전자통신연구원(ETRI)·자동차부품연구원(KATECH) 등 유관 연구기관들도 다수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표원이 5년 이상의 중장기 표준화 계획을 수립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업계가 힘을 모아 자동차 반도체 국산화를 끌어내자는 의지다.

우리나라는 차량용 반도체를 프리스케일·인피니언·르네사스 등 해외 업체에 대부분 의존한다. 차량용 반도체는 개발 기간이 길며, 신뢰성 수준도 굉장히 높아 국산화가 어렵다.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도 개발 기간만 4~5년 걸린다.

신뢰성 평가 방법과 기준도 업체마다 달라 일일이 필드 테스트를 진행해야 한다. 자동차 업체들은 반도체 시험·평가 역량이 떨어져 해외 반도체 업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정작 완성차 업체들은 국제 표준화 회의에 참석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무관심하다. 표준으로 제안할 원천 기술이 부족해 독일·미국 업체에 비해 발언권이 떨어진다. 완성차 업체들은 국내 반도체 업체가 차량용 반도체를 개발해도 상용화에 소극적이다.

최근 자동차와 IT가 융합되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산업 생태계 구조가 바뀌었다. 반도체를 국산화하지 못한다면 우리나라는 자칫 자동차 시장 경쟁에서 밀려날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부는 자동차 반도체 표준뿐 아니라 시험·인증 등 기준을 마련해 국제 기구에 표준으로 제안할 계획이다. 자동차 반도체 표준이 마련되면 개발 기간을 4~5년에서 2~3년 수준으로 단축할 수 있다. 우리 자동차 반도체 표준이 국제 표준으로 격상되면, 국내 반도체 업체들의 해외 진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 반도체 표준의 필요성은 수긍하지만, 정부가 넘어야 할 산이 많다”며 “자동차·반도체 업계의 의견을 잘 조율해 우리 산업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정책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m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