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지난 4일 합의·작성한 `방송통신위원회 및 미래창조과학부 업무 소관`은 합리성과 타탕성이 전무한 졸작이라는 게 중론이다.
주파수 정책 관할을 미래부와 방통위는 물론 제 3의 기구로 분리했을 뿐만 아니라 동일 서비스인 IPTV(미래부)와 종합유선방송사업자(방통위)로 이원화하는 등 시장 상황도 반영하지 못했다.
여야의 이 같은 합의안이 행정 효율성을 차치하더라도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발전을 도모하기위한 최소한의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일각에선 여야의 이같은 합의안이 김종훈 미래부 장관 후보자의 사퇴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허울뿐인 미래부로 전락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합의한 주파수 관할 분리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체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뿐만 아니라 주파수 자원의 효율적 이용을 저해할 것이라는 우려도 상당하다.
세계 주요 국가가 지상파 아날로그 TV방송의 디지털 전환 이후 여유 주파수 대역인 700㎒를 이동통신 용도로 할당하고 있지만 여야 합의안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사실상 불가능하게 된다.
글로벌 주파수 공통대역으로 기술고립을 방지하고, 관련 시장에서의 국제 경제력 강화를 도모하려는 시도조차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한 전문가는 “주파수의 유기적 배분과 시의적절한 회수·재배치는 유선은 물론 무선, 관련 ICT 산업 전반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소”라며 “주파수를 통신용·방송용으로 분리하는 건 난센스로, 핵심은 최적의 주파수로 이용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여야는 또 방통위의 개인정보보호윤리 기능을 방통위에 존치하기로 합의했다.
기존 행정안전부의 정보문화 기능이 미래부 이관이 결정됐음에도 개인정보보호윤리과를 방통위에 존치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판단이다.
개인정보보호윤리 기능은 △통신망에서의 개인정보 보호 △위치정보서비스(LBS) 산업 활성화 △불법유해 정보 방지 같은 정책으로, 인터넷과 통신을 이용한 모든 개인정보보호 정책이다.
미래부로 이관하는 네트워크·인터넷·지능통신망 정책과 분리할 경우, 소기의 정책 효과를 보장할 수 없는 것이다.
또 개인정보 보호가 인터넷·통신 기술의 진흥과 뗄 수 없다는 점을 간과한 것으로, 클라우드 컴퓨팅 등 개인정보를 활용해야 하는 새로운 비즈니스에 장애물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IPTV와 종합유선방송(SO)를 미래부와 방통위로 이원화한 결정도 `동일 서비스, 동일 규제`라는 기본 원칙조차 간과한 것이다. IPTV와 SO간 규제와 진흥 역차별을 조장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전면 수정해야” 한목소리
전문가들은 여야가 원점에서 미래부 기능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다. 여야가 정치적 이해라는 눈앞의 이익에 매몰돼 국가 미래라는 거시적 목표를 등한시했다는 비판도 쏟아졌다.
이들은 여야가 합의한대로 미래부가 가동되더라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한계가 분명하다는 판단이다.
당초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구상한 미래부 기능이 여야 협상으로 축소됐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된 기능을 할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미래부가 본연의 역할보다 방통위를 비롯한 여러 부처로 분산된 정책에 협의하는 일에 집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우려도 상당하다.
전문가들은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의 상징부처로 미래부를 신설한 것”이라며 “박 대통령이 원안 고수 입장을 밝힌 만큼 청와대가 방통위는 물론이고 여러 부처의 업무 이관을 정리하고 미래부 기능을 새롭게 설계하는 게 우선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여야의 협상은 차순위라는 설명이다.
김원배기자 adolf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