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명박 정부 5년은 국가 기술 전략이 구심점 없이 표류한 시기였다. 분산서비스거부(DDoS) 공격 등으로 국가기간망이 마비됐지만 책임지고 지휘할 컨트롤타워가 없어 혼란은 더욱 심해졌다. 보안 사고는 하루가 멀다 하고 터졌다. 주민등록번호가 외국에서 거리낌없이 유통됐다. 국가 연구개발(R&D)을 담당하는 정부 출연연구소들은 5년 동안 구조조정 이슈로 불안에 떨어야 했다.
이러한 혼란은 국가 R&D를 기획하고 추진하는 과학기술부와 정보통신기술(ICT) 컨트롤타워였던 정보통신부를 해체한 것도 주요 원인이라는 지적이 많다. 과기부와 정통부를 해체하고 업무를 타 부처로 분산한 역효과가 이런 형태로 드러났다는 게 전문가의 중론이다.
이러한 비판은 박근혜 대통령이 과학기술과 ICT 업무를 총괄할 미래창조과학부를 신설한 이유기도 하다. 미래부는 과학기술과 ICT를 기반으로 일자리를 창출하고 산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창조경제를 이끄는 역할을 하게 된다. 과학기술과 ICT가 정부 시스템과 산업 전반에 스며들게 해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원동력이 되도록 한다는 박 대통령의 구상이다.
따라서 국가 최고기술책임자(CTO)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사회가 네트워크화되고 기존 산업도 ICT와 융합하면서 각 기업에서도 CTO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기술 트렌드를 읽어내며 강점을 갖고 있는 기술이 어떤 것인지 파악하고 인력과 예산 투입을 결정하는 것이 CTO 역할이다.
국가 CTO는 국가 기술정책 전반을 총괄한다. 기술을 이용해 일자리 창출, 비용 절감, 열린 정부, 국가안보 등 정부 목표 달성을 지원한다. 오바마 미 대통령도 2009년 미국의 기술 리더십을 통합하고, 정부 기관과 긴밀한 접속과 투명한 정치를 구현한다는 구상 아래 국가 CTO제도를 도입했다.
창조경제를 표방한 박근혜 정부에 국가 CTO 역할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박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국가 CTO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부처 차원에서는 미래부 장관이, 청와대에서는 미래전략수석이 CTO 기능을 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국가 CTO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 예산과 조직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두 가지는 기술 로드맵에 따라 일관성 있게 타 부처를 이끌 추진력이자 조건이다. 반면교사는 이명박 정부에서 지식경제부가 추진했던 R&D전략기획단이다.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을 장관급 단장으로 영입해 국가 CTO 역할을 기대했지만 지경부 CTO 역할도 하지 못했다. 타 부처와 관료사회가 제대로 협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가 CTO의 성공 여부는 김종훈 초대 미래부 장관에게 얼마나 힘이 실리는지에 달렸다. 전문가들은 “박 대통령이 김 장관에게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말한다. 김 장관이 한국 실정을 잘 모른다는 이유로 타 부처가 비협조적일 가능성이 높다. 민간인 출신인데다 미국인에 가까운 그를 관료사회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이다. 박 대통령이 부처 이기주의와 관료의 복지부동을 깰 힘을 국가 CTO에게 실어줘야 하는 당위성이다. 이 점에서 박 대통령이 미래부 성공에 새 정부의 성공의 절반 이상을 건 것은 고무적이다.
미래부 장관은 국가의 미래를 준비하고 경제부흥의 근본적 해결책을 찾는 자리다. 대통령이 자주 독대하면서 미래 과학기술사회 비전을 같이 만들어가야 한다.
이 점에서 청와대 미래전략수석의 역할이 중요하다. 박 대통령은 미래전략의 중요성을 인정해 기존 기획관에서 수석급으로 직책을 승격했다. 미래전략수석은 미래부 장관에게 힘이 실릴 수 있도록 대통령을 보좌하고 타 부처를 견인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최선홍 미래전략수석과 김종훈 미래부 장관의 환상 호흡이 기대되는 이유다.
국가 CTO는 민간조직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로 조직을 구성해 과학기술과 ICT산업 활성화 방향을 찾고, 전문 관료들을 통해 법적·제도적 장치와 예산확보와 같은 정책을 펼쳐야 실행력이 생긴다.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