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 정승은 누렁소와 검은소 가운데 누가 더 일을 잘 하느냐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나그네를 조용한 구석으로 데리고 갔다. “소도 말을 알아듣는다”는 게 이유였다. 지금 그런 심정이다. `폴크스바겐 파사트 2.5 가솔린`이 알아들을까봐 맘 편히 말을 못하겠다. 실제 경험해 본 파사트 2.5 가솔린은 강력한 주행 성능 등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디자인과 편의 사양에서 조금 아쉬운 구석이 남았다. 하지만 누렁소나 검은소나 모두 각자의 장점이 있기 마련이다. 또 사용자의 취향에 따라 평가는 조금씩 편차가 있을 뿐이다. 다행히 파사트가 글을 읽지는 못할 테니, 시승기로 말을 대신해본다.
폴크스바겐은 지난해 7세대 파사트를 2.0 TDI 디젤과 2.5 가솔린 두 모델로 출시했다. 파사트는 1973년 1세대가 나온 후 6세대까지 세계에서 1500만대가 넘게 팔린 폴크스바겐의 효자 모델이다. 그런 만큼 7세대에 대한 기대가 컸다. 실제 2.0 TDI 모델은 수입차 베스트셀러 순위에 꾸준히 오르내리며 인기를 증명하고 있다. 하지만 2.5 가솔린 모델의 인기는 조금 뒤처지는 모습이다.
파사트 2.5 가솔린이 잘 달린다는 데는 큰 이견이 없다. 폴크스바겐의 기술력이 집약된 차다. 파사트 최초로 미국 공장에서 조립됐다는 점을 염려하는 사람이 있긴 하다. `큰 손`으로 조립해 차의 정밀도가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다. 그러나 손 크기, 독일이나 미국이나 비슷하다. 더욱이 일반인이 그런 차이까지 느낄 수 있을까 싶다.
속도 한계를 190㎞로 설정해두었는데, 그 안에서 부족함 없는 힘을 자랑한다. 5기통 2.5ℓ 가솔린 엔진이 최고출력 170마력(5700rpm), 최대토크 24.5㎏.m(4250rpm)의 강한 힘을 뿜어낸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에 도달하는 시간이 9.2초다. 사운드 튜닝을 거친 엔진에서는 스포츠카를 연상시키는 소리가 가슴을 뛰게 한다.
실제로 몰아보니 기분 좋은 엔진음을 들으며 순식간에 시속 170~180㎞에 도달한다. 코너를 돌 때도 차 쏠림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 승차감과 정숙성도 크게 흠잡을 데가 없다.
넓은 실내 공간도 돋보인다. 이 차의 실내가 넓다는 것에는 대부분이 동의한다. 중국과 미국 시장을 의식해 차체를 키운 덕에 앞좌석과 뒷좌석 모두 다리를 넉넉하게 뻗을 수 있을 정도로 넓어졌다. 이전 세대에 비해 차량 전장이 103㎜ 늘어난 효과가 크다. 특히 10% 가까이 커진 529리터짜리 트렁크에는 골프 가방 4개가 동시에 들어간다.
하지만 이 차의 디자인을 칭찬하기는 쉽지 않다. 이전 세대의 날렵하면서도 완성감 있는 디자인은 찾아보기 어렵다. 외관은 말쑥한 정장을 차려입은 듯 하지만, 지나치게 모범생을 연상시켜 보는 이를 휘어잡는 맛이 부족하다. 실내 인테리어 역시 평범하다. 특히 대시보드의 갈색 우드그레인은 중후한 멋을 내지만, 이 차의 전체적인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다.
가장 아쉬운 점은 빈약한 옵션이다. 독일형 모델에는 채택된 전자식 브레이크나 오토 홀드(자동으로 브레이크를 잡아주는 기능), 자동주차시스템 등의 옵션이 빠졌다. 그러면서도 가격은 3750만원으로, 경쟁 차종으로 꼽히는 현대차 그랜저의 주력 모델보다 400만~500만원이 비싸다. 옵션을 뺐으면 가격이라도 확 낮췄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파사트 2.5 가솔린은 지난해 10월 출시 이후 12월까지 113대가 팔리는데 그쳤다. 한 달에 40대도 팔지 못한 셈이다. 같은 7세대 모델인 파사트 2.0 TDI가 지난해 8월 출시 이후 12월까지 1401대가 팔려 월평균 280여대가 팔린 것과도 크게 비교된다. 한국 자동차 소비자, 꽤 까다롭다.
김용주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