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천년을 이어온 국가는 그리 많지 않다. 그 중에서도 인구 10만의 도시국가로 패권을 유지하며 천년을 유지한 나라가 있다고 한다면 믿기 어려울 것이다. 바로 이탈리아 북동부에 위치한 해상도시국가 베네치아다.
1797년 나폴레옹의 침공으로 이탈리아 왕국에 편입될 때까지 약 1000여년 간 독자적인 도시국가로 존속하면서 지중해 무역의 왕자로 군림했다. 베네치아는 서유럽과 비잔틴제국, 소아시아, 북아프리카를 연결하는 동지중해 무역을 지배하면서 오리엔트의 화려한 문물을 서유럽 세계에 전해주는 역할을 했다.
베네치아가 강소국의 성공모델이 될 수 있었던 요인으로는 무엇보다도 해상무역을 국가존립의 기반으로 삼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특히, 국가를 하나의 주식회사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체계적인 상사조직을 완비하여 누구든지 해상무역에 뛰어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세계 최초로 복식부기와 외교관 상주제도를 도입한 것도 바로 베네치아인들이었다. 이데올로기나 종교보다는 철저한 실리주의에 입각한 상인정신과 베네치아만의 독특한 정치제도로 인한 국내정치 안정도 성공요인이 됐다.
베네치아를 상징하는 것에는 보통사람들이 잘 모르는 한꼭지가 더 있다. 세계 최초의 특허제도다.
베네치아는 1474년 세계 최초로 특허제도를 공포했다. 1453년 당시 지중해 세계에서 가장 앞선 문물을 자랑하던 비잔틴 제국이 이슬람 세력에 의해 멸망한 후 갈 곳을 잃은 비잔틴의 고급 기술자와 숙련공들을 베네치아로 유치하기 위한 것이었다. 베네치아처럼 작은 나라가 지중해 전역의 해상 교통로를 장악하고 거점도시의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매우 효율적인 국가시스템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유능한 기술인재의 양성과 유치가 필수적이었다.
이처럼 특허 제도는 우수한 기술 인력을 확보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제도이다. 우리나라 특허제도는 과연 우수한 기술 인력을 유치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 지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스위스 IMD가 발표하는 세계경쟁력지표 중에 `두뇌유출지수(BDI)`가 있다. BDI가 10이면 모든 두뇌가 자기 나라에 남고자 하는 것이고 0이면 모두 떠나고자 함을 뜻한다. 2011년 기준으로 노르웨이가 1위(7.86), 스위스가 2위(7.41), 미국이 5위(7.15)인 반면, 우리나라는 3.68로 전체 59개국 가운데 44위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에 따르면 미국 체류를 희망하는 한국인 박사가 75%에 달한다고 한다. 과학기술인들이 미국을 자국보다 더 기회의 땅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중국마저 우리나라의 고급 기술인력 스카우트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지식재산권 보호수준은 특허권자 승소율 25%, 특허무효율 65%, 평균 손해배상액 5000만원 수준에 머물러 있어 과연 인재 유치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 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강소국의 생존 조건은 풍족한 천연자원도 강대한 군사력도 아니다. 우수한 인재 확보가 관건이라는 것을 역사는 말해 주고 있다. 새 정부 핵심 공약사항 중 하나가 창조경제론이다. 지식재산 생태계 구축을 통해 창조적인 젊은 인재들의 창업을 활성화시켜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고자 했다.
시기 적절한 정책이다. 지식재산 강국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를 기대하게 한다. 강력한 지식재산 보호를 기반으로 우리 젊은이들이 세계 속의 대한민국으로 천년 역사를 써 나갈 것을 기대한다.
박성준 특허청 기획조정관 sjpk@kipo.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