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정의 어울통신]대통령의 약속 vs 톨스토이의 약속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가 여행길에 올랐을 때의 일이다. 어느 한적한 시골길에서 일곱 살 정도의 귀여운 소녀를 만났다. 소녀는 백합꽃 수를 놓은 그의 가방을 보자 갖고 싶다고 엄마에게 떼를 썼다. 그는 가방을 다음날 주겠다고 선뜻 약속했다.

다음날, 그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소녀의 집에 도착했을 때 소녀는 이름 모를 병으로 죽은 뒤였다. 그는 소녀의 어머니에게 무덤으로 안내해 달라고 부탁했고, 자신이 아끼던 가방을 무덤 앞에 바치고 기도했다. 그리고 애가 없으니 가방을 가져가도 된다는 소녀의 어머니에게 그는 “소녀는 죽었지만 나의 약속은 죽지 않았다”고 말했다.

18대 대선이 끝났다. 새 대통령이 탄생했다. 과반인 51.6%의 지지율이다. 국민은 그의 약속을 믿고 지지를 보냈다. 국민의 선택이다. 그의 약속은 공약집에도 있고 방송·신문·인터넷 등 언론의 인터뷰를 통해서도 나왔다.

그의 약속들은 무엇이 있을까. 우선, 경제 정책의 변화다. 이른바 `박근혜식 경제민주화`다. 정부지원을 대기업 중심에서 중소기업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수출과 내수가 함께 가는 쌍끌이 경제 구현도 있다. 여기에는 재벌개혁도 포함돼 있다.

일자리 창출과 가계부채 해소도 있다. 핵심은 창조경제론과 중산층 재건 프로젝트다. 일자리 150만개 창출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수준의 기준 고용률 70%를 달성하겠다고 했다. 창조적 중소기업 육성과 대학의 창업기지화도 약속했다.

대외 정책의 변화도 다짐했다. 남북대화 재개와 남북교류협력 활성화, FTA 등과 같은 경제외교를 통한 신성장동력 발굴 등도 약속했다. 선행학습을 통한 사교육비 경감과 고교 무상교육, 대학생 반값등록금 구현 등도 있다.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도 있다.

또 미래형 창조정부의 구현이다. 창조경제를 통한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정부 조직부터 바꾸겠다는 것이다. 미래창조과학부·해양수산부·ICT전담부처의 신설도 약속했다.

우리는 사는 동안 수많은 약속을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약속, 부모와의 약속, 친구와의 약속, 자신과의 약속일 수 있다. 고객과의 약속도 있다. 하지만 어떤 약속이든 지키기는 쉽지 않다. 오죽하면 나폴레옹이 `약속을 잘 지키는 방법은 약속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을까.

그러나 정치 지도자라면 다르다. 그의 약속은 사회·경제·교육·외교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 국운을 가를 수도 있다. 그런데도 수많은 약속을 쏟아낸다. 표가 우선이고 승리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새 대통령은 어떨까. 박근혜 당선인은 신의, 특히 약속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다. 그런데도 벌써부터 선거 공약(公約)이란 것은 공약(空約)이 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이 그의 주변에서 나온다. 유권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전략상 약속한 것들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국민과의 약속을 가벼이 여기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대선이 끝났다고, 상황이 달라졌다고 얼굴을 바꾸면 지지한 유권자들만 바보가 된다.

약속의 참된 의미를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세계적 대문호 톨스토이는 아주 작은 약속도 얼마나 중요한지 몸으로 직접 설파했다. 우연히 만난 이름 모를 소녀와의 약속도 가볍게 여기지 않는 것이 그의 진정성이다.

새 대통령은 유세 과정에서 수많은 약속을 했다. 작은 약속도 있고 큰 약속도 있다. 새 시대를 여는 진정한 지도자라면 약속을 지켜야 한다. 공약집의 약속뿐만이 아니다. 어느 작은 동네에서 우연히 말로 한 작은 약속이라도 더 세심하게 배려하고 지키는 그런 지도자여야 한다. 그게 시대가 요구하는 지도자상이다.


박승정 정보사회총괄 부국장 sjpark@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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