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 당장 갈아타라.”
지난주 만난 중소업체 K 대표. 기자에게 최근 대출금리 동향을 듣고는 곧바로 수화기 너머 경리부장에게 거래은행 변경을 지시한다. 하지만 공무원 출신답게 이내 한마디 남긴다. “나야 좋긴 한데 그 이자에 돈 빌려줘도 은행들 먹고사나 몰라?”
잘 못산다. 숫자가 말해준다. 국내 은행의 올해 1∼3분기 당기순이익은 작년 동기 대비 39% 감소했다. 특히 순이자마진(NIM)은 6분기 연속 급락해 2.06%를 기록했다.
은행이 돈 버는 메커니즘은 단순하다. 저금리를 주고 예금을 받아 고금리로 대출해주면 된다. 그런데 요즘 이것이 거꾸로다. 10월 예금은행의 전체 중소기업 대출 가운데 절반가량(48.8%)은 금리가 연 5% 미만이다. 지난 1999년 12월 이후 가장 높은 비율이다. 일부 우량 중소기업은 지점장 전결로 3%대의 우대금리를 적용받는다. 요사이 고리를 주고 은행 돈을 쓰면 바보 소리를 듣는 이유다.
수시입출식 예금에 고금리를 안겨줘 인기몰이를 한 KDB산업은행. 이번에는 3.95%의 특별저금리 대출상품을 내놓았다. IBK기업은행 역시 올해 들어 대출금리를 계속 낮춘 데 이어, 오는 27일 사상 처음으로 중소기업 최고 대출금리인 `한 자릿수(9%)대 진입`을 전격 발표할 계획이다. 당연히 두 국책은행의 올해 경영 실적은 최악이다.
은행 부실은 국가경제 전체의 부실로 이어진다. IBK기업은행에서 2000억원이 넘는 배당금을 매년 챙겨온 정부의 수입이 당장 크게 줄어들 판이다. 다른 산업과 달리 금융권 부실은 국민이 낸 세금(공적자금)으로 메워진다는 점에서 죄악시해야 한다.
특히 이 같은 저금리 상황에서는 정말 돈이 급해도 신용도가 낮으면 아예 제1금융권 대출이 막혀버리는 폐단이 발생한다. 일선 지점장은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저리로 대출해 줄 이유가 없다. 중소기업 돕자고 시행한 정책이 정작 영세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사채의 구렁텅이로 내모는 꼴이다.
문제는 대선 이후다. 여야 유력 두 후보 모두 경제 민주화만 외쳐댈 뿐 문제의식조차 없다. 문제를 제기하는 순간 표가 떨어진다는 것을 잘 알아서다. 오히려 하우스푸어 은행 빚 탕감, 각종 무상 지원 등 서민경제 활성화라는 미명 아래 공약(空約)을 넘어선 `악약(惡約)`이 판친다. 이래저래 꼬박꼬박 이자를 내며 성실히 살아온 대다수 금융 소비자들 가슴만 타들어 가는 세밑이다.
류경동 경제금융부 ninan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