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의 정보통신부 비사]<117>PCS 특혜의혹(2)-정통부 특감

권력은 때로 봄볕처럼 포근하지만 뇌성벽력과 함께 폭풍을 몰고 오기도 한다. 비정한 권력의 다른 모습이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이 1998년 2월 3일 “개인휴대통신(PCS) 문제는 명확히 밝혔으면 좋겠다.”고 하자 PCS 특혜의혹의 검은 구름은 정보통신부와 관련업계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2월 4일.

대통령직 인수위 경제Ⅱ분과위원회는 즉시 감사원에 정통부에 대한 특별감사를 요청했다. 감사원은 5일 인수위 정무분과와 경제Ⅱ분과위와 회의를 갖고 PCS와 TRS(주파수공용통신) 등 7개 분야 기간통신사업자 선정 전반에 관해 정통부 담당인 감사1국을 중심으로 자료수집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PCS 특혜의혹에 대한 특감은 급류를 탔다.

2월 9일 오후.

정무분과위와 경제Ⅱ분과위는 인수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이례적으로 감사원과 정보통신부, 통신업체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합동회의를 열었다.

정무분과위 김정길 간사(행정자치부 장관 역임)는 합동회의 개최에 대해 “PCS 등 기간 통신사업자 선정과정에 대한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지난 해 4월 감사를 했던 감사원과 정보통신부 양측의 입장을 모두 들어볼 필요가 있어 이같이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정통부에서 박성득 차관(현 한국해킹보안협회장, KMI 이사회 의장)과 정장호 LG텔레콤 사장(현 마루홀딩스 회장), 이상철 한국통신프리텔 사장(KT 사장, 정통부 장관 역임, 현 LG유플러스 부회장), 정용문 한솔PCS 사장(삼성전자 정보통신부문 대표 역임) 등이 참석했다.

감사원에서는 윤은중 제2사무차장(감사위원 역임)과 박만 1국장(감사원 사무차장 역임)이 나왔다.

정무분과에서는 김정길 간사와 김덕규(국회 부의장 역임), 이건개(15대 국회의원 역임, 현 변호사), 조찬형(검사, 국회의원 역임, 현 변호사), 추미애(민주통합당 최고위원) 위원이, 경제Ⅱ분과에서는 최명헌 간사(노동부 장관 역임)와 박찬주 위원(판사, 15대 국회의원 역임, 현 변호사), 지대섭 위원(15대 국회의원 역임, 현 서울마주협회장), 한호선 위원(15대 국회의원 역임) 등이 자리를 같이 했다.

인수위원들은 이날 정통부로부터 사업자 선정 보고를 받고 △1996년 6월 사업자 선정 당시 장관의 역할 △관련서류를 2급 비밀로 처리한 이유 △특정업체 선정의 정치적 배경 △1개 사업자가 3개로 늘어난 이유 등을 집중 추궁했다.

인수위원들은 김영삼 대통령 차남 현철씨(여의도연구소 부소장 역임, 현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와 전 안전기획부 간부 K씨 등의 역할을 거론하며 특정업체에 대한 특혜의혹을 제기했다. 또 사업자 수가 늘어난 점과 청문회 심사배점에서 전무배점방식을 채택한 배경도 물었다.

감사원에 대해서는 △1997년 4월 정보통신부 감사 시 PCS 선정 주무 장관이었던 이석채 전 장관(현 KT 회장) 조사를 제외한 이유 △감사결과 미발표에 대한 외압여부 등을 추궁했다.

지대섭 당시 경제Ⅱ분과 위원(14대 국회의원 역임, 현 서울마주협회장)의 증언.

“정통부는 회의에서 사업자 선정에 문제가 없다고 답변했습니다. 하지만 인수위 측은 각종 언론에 나온 정권차원에 정경유착이 사업자 선정 배후에 있었다는 의혹을 갖고 있었습니다. 사업자 선정 관련 자료를 2급 비밀로 분류한 점도 따져 물었어요.”

합동회의에 참석했던 박성득 당시 정통부 차관의 회고.

“인수위원회에서 여러 가지를 문제에 대해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저는 당시 정통부 장관의 통신정책 판단에 대해서는 문제 삼을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박 차관은 인수위 측의 2급 비밀서류 공개 요구에 대해서도 감사원 측에 원칙대로 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인수위 측은 감사원이 PCS 서류를 정통부가 2급 비밀로 분류했다고 해서 감사결과를 비밀로 분류해 발표하지 않은 것은 `PCS 비리의혹에 대한 면죄부를 주기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정장호 당시 LG텔레콤 사장은 인수위에 불려간 기억은 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오래전 일이어서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수위 정무분과위와 경제Ⅱ분과위는 합동회의 후 PCS 사업자 선정과 관련해 뇌물수수 등 비리사실이 드러날 경우 감사원 특감에 이어 관련자들을 전원 검찰에 고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2월 11일. 감사원이 전면에 나섰다.

감사원은 이날부터 15일까지 PCS와 TRS 등 기간통신사업자 선정관리실태 관련자료 수집을 하고 이어 16일부터 3월 10일까지 20일간 정보통신부에 대한 특감에 착수했다. 감사원은 감사1국 오정희 과장(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감사원 사무총장 역임)을 반장으로 8명의 감사팀을 정보통신부에 파견했다. 이들은 정통부 대회의실에서 기간통신사업자 선정 전반에 관해 특감을 실시했다.

감사원은 특감 이유에 대해 “국민의 의혹을 받고 있는 PCS사업자 선정과정의 비리존재 여부를 확인하고, 사업성이 불투명한 TRS 등 여타 사업의 과당경쟁, 중복투자로 인한 자원낭비 개선방안 등을 마련하기 위해 특감을 실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감 대상은 PCS사업의 경우 △사업자수, 사업자 선정방식, 청문평가방식 변경 사유 △심사위원 선정 및 평가관리의 적정성 △심사·선정과정에 외부인의 부당 개입 여부 등이었다. CT-2와 기간통신사업자에 대해서는 과당경쟁, 중복투자 등에 대한 관리감독의 적정성 여부를 집중 따졌다.

감사는 2단계로 나눠 진행했다.

1단계는 15일까지 선정관리 실태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2단계로 16일부터 현장조사에 나섰다. 현장 감사에서 감사팀은 PCS 인허가 과정에서 청문평가 방식 변경경위와 사업자 수와 선정방식 타당성 여부를 집중 확인했다.

감사팀은 정보통신부 관계자와 당시 사업자 선정위원을 상대로 △사업자 선정이 추첨제에서 점수제로 바뀐 경위 △청문회 배점방식을 평균점수방식에서 전무배점방식으로 바꾼 이유 △통신장비제조업군과 비제조업군에서 각각 사업자를 선정하는 제한 경쟁방식 도입 경위 △서류심사 후 청문심사 도입과 청문심사에서 LG텔레콤과 에버넷(삼성-현대 컨소시엄)의 순위가 뒤바뀐 경위를 추궁했다.

감사팀은 당초 계획대로 3월 10일 정통부에 대한 특감을 끝내고 철수했다. 하지만 감사팀은 PCS 특혜의혹을 입증할만한 구체적인 사실을 확인하지 못했다. PCS 사업에 정경유착의 엄청난 권력형 비리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 인수위 측의 시각과는 차이가 많았다.

3월 14일.

한승헌 감사원장서리(현 변호사)는 이날 기자들에게 “PCS특감은 생각보다 대단한 의혹이 밝혀진 게 없으며 대어를 낚을 가능성도 적어 보인다”고 말했다. 감사원은 PCS특감은 큰 적발 사항이 없는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감사원의 한 관계자는 “조사가 이 상태에서 끝난다면 작년 4월 정통부 일반감사에서 PCS부분을 주의 2건으로 마무리한 것에서 크게 진전된 것도 없다”며 “담당공무원들의 징계 여부도 불투명할 정도”라고 말했다.

감사원은 이날 이석채 전 장관이 개인휴대통신(PCS) 사업자 선정과정의 부당한 개입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하와이 동서문화센터에서 연구 중인 이 전 장관에게 서면질의서를 보낸 결과, 여러 가지 사항에서 자신의 과오와 책임이 없다는 내용의 답변서를 받았다고 공개했다.

이 전장관은 LG텔레콤과 한솔PCS가 사업자로 선정된데 대해 “정치적 압력이 없었고 사업자 선정도 독자적 소신에 의해서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업자 선정방식이 추첨제에서 점수제로 변경된데 대해 “추첨제의 문제점이 많아서였기 때문”이라고 답변했고, 서류심사의 점수 순위를 뒤바꾼 청문심사 도입 경위에 대해서도 “청문회 제도는 실무자들이 작성한 허가심사기본계획에 포함돼 있어 그대로 추진한 것이지 내가 (지시)한 것은 아니다”라고 답변했다. 청문심사위원 선정에서는 “정보 누설의 최소화를 위해 내가 직접 선정했다”고 답변했다고 감사원은 설명했다.

3월 21일.

감사원은 감사위원회의를 거쳐 이날 오전 김대중 대통령에게 한승헌 감사원장서리(현 변호사)가 청와대에서 PCS 특별감사에 대한 중간 결과를 보고했다.

한 감사원장서리는 이어 기자간담회에서 개인휴대통신(PCS)을 포함한 기간통신사업 특별감사의 중간 결과를 설명, “기간통신사업은 과다한 사업자 허가와 중복투자가 특감에서 지적됐다”고 밝혔다.

실제 본지가 최근 입수한 감사원 감사결과 처분요구서에도 PCS사업과 관련, 특혜의혹 등의 적발사항은 없었다. 의혹은 잡초처럼 무성했지만 특혜의혹의 실체는 없었다.

감사원은 CT-2의 경우 외국에서는 폐지단계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10개 `삐삐` 사업자에게 사업을 허가했으나, 그 후 사업자들이 적자누적, 채산성 악화 등에 따라 모두 한국통신에 사업권을 반납해 투자비 3300억원, 누적적자 2300억원 등의 손실을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TRS사업의 경우 17억원을 들여 국산장비를 개발하고도 외국산 장비를 다시 들여옴에 따라 500억원을 낭비하게 했다고 주장했다.

통신사업자 사후관리의 경우 무선기지국 난립방지를 위해 추진하는 기지국 공용화 계획이 미흡하고 수립한 계획조차 제대로 추진하지 못해 공용화 실적이 저조하다고 말했다.

감사원은 정통부 장관에게 지적사항에 대해 재발을 방지하고 업무 관련자는 주의 촉구(주의)조치를 취하라고 통보했다. 말도 많고 의혹도 많았던 20일간의 특감결과치고는 빈약했다. 일단락될 것으로 예상했던 PCS 특혜의혹은 감사원이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바람에 의혹의 불길이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 정통부로선 예상치 못한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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