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던 현대·기아차가 큰 위기에 봉착했다. 두 회사는 유럽 재정 위기에도 불구하고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저력을 발휘해왔다. 신흥국으로 시장을 다변화해온 노력이 빛을 발했다.
그러나 최근 상승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발생했다. 자동차 연비가 부풀려졌다며 미국 정부가 제동을 걸었다. 현대·기아차는 연비를 하향 조정하고 소비자 보상금까지 지급하는 등 발 빠른 대응에 나섰지만 체면을 구겼다.
브랜드 가치도 곤두박질쳤다. 설상가상으로 배상액 규모도 당초 예상보다 불어났다. 미국에 이어 캐나다 소비자들까지 집단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몇 년 전 브레이크 스캔들로 곤욕을 치른 도요타는 반사이익을 본다. 세계 여러 기관이 테스트를 했는데 도요타 자동차 연비가 실제 표시보다 오히려 높게 나타났다.
거대한 댐도 작은 구멍으로 무너진다. 그동안 성공에 도취해 자만했던 것은 아닌지 현대·기아차 경영진은 고민해야 한다.
연비 하향 조정 사태를 계기로 뼈를 깎는 혁신을 감내해야 한다. 위기는 조직을 혁신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다.
과거 삼성전자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 3년 전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시장 대응에 늦어 큰 위기를 맞았다. 애플 아이폰 충격으로 삼성전자 모바일 사업부는 밑바닥까지 추락했다. 첫 스마트폰 옴니아 출시 행사에 외신 기자를 모으기 힘들 정도였다.
그러나 위기를 기회로 활용해 삼성전자는 세계 휴대폰 1위 기업으로 거듭났다. 애플 혁신을 면밀히 분석하고 벤치마킹한 덕분이다. 갤럭시는 아이폰과 더불어 고가 스마트폰의 대명사로 불린다. 지금은 애플이 오히려 삼성전자의 혁신을 배운다.
진정한 강자는 적에게서 비법을 배운다. 역사가 이 명제를 증명한다.
로마는 카르타고와 포에니 전쟁을 치르면서 적장 한니발의 전술·전략을 배워 결국 그를 꺾었다. 로마가 스스로의 방법을 고집했다면 고대 지중해의 패권은 카르타고가 장악했을 것이다. 나폴레옹도 적대국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제 전술을 통달해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이겼다.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승자의 법칙`을 현대·기아차 경영진이 지금 되새겨 봐야 하는 이유다.
이형수 전자산업부 goldlion2@etnews.com